[월요 인터뷰] 기업금융 자문社 창업한 정건용 前산업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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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시절 '관치금융'의 대명사로 불렸던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어느날 갑자기 산은 총재직을 사퇴했던 그가 2년3개월 만에 금융계로 복귀했다.
지난 5월 중순 기업금융 자문회사 '제이앤에이 파스(J&A FAS)'를 설립해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회사는 출자금 6억원인 유한회사로 그와 부인이 70%를 출자했다.
그는 또 52개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여하는 '기업금융전략포럼'이라는 모임도 결성,지난 6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상임고문을 맡았다.
정 회장에게 '관치금융의 화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있던 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부도 사태를 맞아 은행들을 상대로 '팔목 비틀기'를 자행(?)했다.
이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산은 총재를 맡고서도 그는 대우자동차 하이닉스반도체 등 대형 부실기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몸을 사리는 시중 은행들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다.
그랬던 그가 '순수 민간인' 신분으로 '제2의 금융인생'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다짜고짜 양재동 사무실로 찾아가 만나봤다.
2년여 동안의 근황을 묻자 정 회장은 "로펌 등 여러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사양했습니다.
그런 곳에 가서 하는 일 없이 밥값 벌어먹고 있는 게 얼마나 등골 땡기고 자존심 상하는 노릇입니까"라며 웃어 넘겼다.
늦깎이 창업 동기에 대해서는 "오래 놀았고 공직자 취업 제한(2년)도 해제됐으니 그간 쉬면서 생각했던 것을 시작해 보려는 것뿐입니다.뭔가 큰 일을 꾸미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갖고 있는 금융 지식과 노하우를 중소·중견 기업들에 전해주자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 중소·중견 기업은 금융을 너무 몰라요. 평소에는 기업과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는 게 우리나라 은행들의 현실입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 회장은 중소기업들의 금융거래 관행에서 문제 사례 한 가지를 들었다.
"대출 규모가 수십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 기업들도 보통 대여섯 개 은행과 거래하고 있는데,어느날 악성 루머가 돌아 한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면 다른 은행들도 앞뒤 가리지 않고 여신을 회수하게 마련입니다."
그는 "이런 기업들에 거래 은행을 1~2개로 줄이고 평소에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게 제가 해보려는 일입니다"고 밝혔다.
그는 "대출브로커를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로 돈을 벌 생각도 없습니다"라며 이미 몇몇 기업과 계약을 맺었다고 소개했다.
정 회장은 또 여유가 생기면 '사랑방'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백수로 2년여 지내다 보니 한창 일할 나이에 물러난 고급 인력 가운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별안간 할 일이 없고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습니다. 이건 국가 전체적으로도 낭비입니다. 중도 퇴직한 고급 인력들이 친목을 도모하면서 정보도 교류하고 재취업도 할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話題)를 경제 쪽으로 돌리자 정 회장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었다는 듯 소신을 쏟아냈다. 행담도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왜 싱가포르 투자회사가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꺼냈다.
"돈이 싱가포르밖에 없습니까. 사업성이 있다면 국내 기업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조(兆) 단위로 현금을 갖고 있는 기업이 부지기수인데….외국 자본은 괜찮고 국내 기업은 안 된다 하는 게 무슨 논리입니까."
그는 국내 기업들도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펴야 하고,국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둔화 우려에 대해 그는 "7~8%대의 고도성장 시대가 지난 만큼 저성장이 곧 경제위기라 단정할 수 없지만 전 세계와 비교해 우리가 유독 성장이 낮다면 그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개인 등 경제주체의 의욕이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경제하는 사람의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정책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화제를 그의 닉네임인 관치금융 문제로 옮기자 정 회장은 '시대적 산물'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직후엔 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때문에 기업 대출을 꺼렸습니다. 그 바람에 중소기업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지요. 금융정책국장으로서 은행에 도덕적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지요.물론 부드러운 자세는 아니었습니다. 그때 제가 염라대왕처럼 보였던 모양이에요. 시간이 흐른 뒤 당시 은행 임원들과 저녁을 먹을 때 모두 '잘 했다'고 그러더군요."
그는 산은 총재 재직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대우차 매각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대우차 부평공장은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훨씬 높았습니다.경제논리로 보면 당연히 청산하는 게 맞지요. 그런데 정치·사회논리에 밀려 청산 결정을 못 내려 GM과의 협상에 걸림돌이 됐습니다. 소신과 맞지 않는 결정을 해야 할 때 괴로웠습니다."
정 회장은 작년 말 통합증권거래소 초대 이사장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가 정부 '압력'으로 사퇴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후보가 돼 달라고 해서 지원했을 뿐 처음부터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공직에 뜻이 없느냐는 질문에 "공직은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더욱 우스운 것"이라며 "공직에 대한 욕심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