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스페셜 럭셔리 존] 40~50대 레옹族 뜬다


중소 식품업체 사장 A씨는 지난달부터 매일 한 시간씩 헬스장에 나가고 있다.


오는 9월까지 몸무게를 5㎏ 줄이기 위해서다. 집중 단련 부위는 복근과 어깨선.지난달 이탈리아 출장길에 사온 가을 양복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게 목표다.
몸매 관리에 들어간 이후 벌써부터 젊어졌다는 인사를 듣고 있다.


얼마 전 참석한 와인강좌 모임에서는 베스트드레서로 뽑히기도 했다.


72학번(53세)인 자신이 90학번대의 젊은 친구들을 젖힌 데다 여성 회원들의 몰표를 받아 더욱 흐뭇한 기분으로 회사일을 챙기고 있다.
아저씨들은 모두 칙칙하고 촌스럽다고? 하지만 A씨와 같은 레옹(leon)족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레옹족은 일본 남성 패션잡지 레옹의 히트로 생겨난 신조어.자신을 가꾸고 다듬을 줄 아는 멋쟁이 4050세대 남성을 지칭한다.


패션비즈니스 전문지 패션비즈의 민은선 이사는 "상류층을 타깃으로 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레옹이 일본의 젊은층보다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년 남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 책을 쇼핑의 지침서로 삼아 멋지게 꾸밀 줄 아는 중·장년층을 레옹족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민 이사는 국내에서도 4050 멋쟁이 남성들이 급격히 늘면서 새로운 소비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레옹족은 패션뿐 아니라 미용 음식 문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높은 관심과 상식을 갖고 있는 게 특징이다.


패션 유통업계에서 대표적인 레옹족으로 꼽히는 정용화 주영 사장(58)은 세련된 옷차림과 매너는 기본.골프와 조깅 수상스키 승마 등 각종 레포츠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데스크톱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며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얼리 어답터이기도 하다.


건축설계 회사인 워커그룹코리아 손성희 사장(전 듀퐁 대표)은 국내에서 레옹족이 늘고 있는 이유를 주5일 근무제 시행에서 찾고 있다.


"4050세대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서울올림픽 전후에 20,30대를 보냈다"며 "기본적인 소비성향과 문화 전반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는 그들이 주5일 근무제 실시와 함께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회사와 집밖에 모르던 중년 남성들이 여가 시간이 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기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인이 사다 준 옷만 입다가 자기가 직접 고르고 피부 마사지도 받고 정보와 만남이 있는 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식이다.


실제 1~2년 전만 해도 셔츠 매장에 발을 들여놓는 손님은 대개가 여성이었으나 요즘은 7 대 3 정도로 남성이 많고 그 중 절반이 4050세대다.


IMF 외환위기 이후 불어 닥친 벤처 붐과 창업 열풍도 레옹족 증가에 한몫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예전 자영업자의 이미지는 ‘잠바(점퍼)’에 면바지,운동화로 대기업 사원의 번듯한 수트 차림과 대조적이었다.그러나 이젠 다르다. “대기업이 더 이상 평생직장이 아니고 음식점을 조그맣게 시작해도 수십억원을 벌 수 있는 세상이 됐잖아요.식당 차려놓으니 만나자는 사람도 많고 다른 비즈니스도 계속 연결돼 수트를 입을 일이 많아요.” 최모(45세)씨는 3년 전 회사를 나와 강남에 레스토랑을 차리면서 레옹족이 됐다고 말했다.


유통 및 패션업계에서는 레옹족이 남성시장에 큰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갤러리아 백화점 오일균 영업부장은 “검정색 일색이던 신사 구두 매장이 어느새 갈색 물결로 바뀌었다”며 그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지적했다.새로 산 갈색 구두에 맞추기 위해 청바지를 사고 명품 재킷도 구입해 신수요를 낳을 것이라는 기대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net



*나도 레옹족일까,체크 포인트 7 (패션비즈 제공)


1.맛있고 합리적 가격의 와인을 알고 있다


2.새롭게 오픈한 레스토랑은 언제나 체크한다


3.단골 바와 초밥 전문점이 정해져 있다


4.에스테틱&네일 살롱을 정기적으로 다닌다


5.헬스장에는 전용 트레이너가 있다
6.기념일 외에도 부인에게 꽃을 보낸다


7.청바지에도 재킷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