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울 4경 ‥ 김연신<한국선박운용 사장>

김연신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마음을 두고 들여다보면 그곳이 바로 선경(仙境)이겠지만,필자 나름대로 서울에서 계절 따라 즐길 만한 곳을 고른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봄에는 응봉산에 개나리가 만발한 광경을 봐야 한다. 강변북로 잠실 방면에서 마포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갑자기 나타나는 눈부신 노란산이다. 동호대교를 남단에서 북단으로 건너면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기도 한다. 온통 개나리로 뒤덮인 이 산을 보고 있노라면 겨울의 음울함에서 벗어나 희망의 나라로 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힘찬 신호를 느낄 수 있다. 봄의 응봉산은 서울을 장식하는 금단추다. 여름에는 국립극장 옆에서 시작,남산 팔각정을 거쳐 남산시립도서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좋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시원한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새 소리도 들리고 다람쥐도 보인다. 여름의 무성한 잎들을 보면서 천천히 남산을 걸어 올라가면 나무들이 분주히 탄소동화작용을 하는 것이 보이고 노동의 신성함과 근로의 경건함을 생각할 수 있다. 가을에는 화동의 정독도서관 벤치에 앉아 인왕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정독도서관에 있는 괴화나무가 가을을 맞는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벤치에 앉아 인왕산 바위가 햇빛이 기우는 데 따라 색깔이 변하는 걸 봐도 좋다. 대개 오전에는 흰 빛깔이 많고 오후 4시쯤이 되면 보라색으로 갈아입는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산의 색이 변하는 것과 가을 낙옆 뒹구는 것을 보면 누군들 시인이 아니될 수 있으랴? 겨울에 눈이 오면 북한산을 반드시 오른다. 첫눈이나 두 번째로 눈이 오는 날이 아니라 깊은 겨울눈이 여러 번 내려 북한산이 하얗게 뒤덮인 후 다시 눈이 오는 날이라야 한다. 대서문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완만한 코스를 아이젠을 끼고 오르면 흐르다가 굳어 있는 북한산 계곡물을 볼 수 있고,조선시대 사람들의 안보 의지가 서려 있는 조선 행궁을 들를 수 있다. 대남문에 도착,눈 오는 서울 시내를 굽어보며 뜨끈한 컵라면 한 그릇 후루룩 먹으면 세상에 더 욕심을 가져 무엇할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