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8일자) 소버린 SK지분 매각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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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SK주식 지분 전량(14.82%)을 영국과 홍콩계 투자기관에 매각키로 했다고 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명분으로 SK그룹 경영권 장악을 시도해 갖가지 부작용을 만들어냈던 전력에 비춰볼 때 어쩐지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더구나 8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게 됐다니 생각해 볼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소버린의 이번 결정은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해왔던 바가 그대로 현실화된 결과에 다름아니다. 수익을 좇는 자본의 기본적 속성을 감안할 때 소버린의 SK경영권 장악시도는 투자 차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것이라던 예측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국부유출이지만 그렇다고 소버린측을 무조건 몰아붙일 상황은 아니다. 투자를 본업으로 하는 소버린으로선 과정이야 어찌됐건 치밀한 전략을 통해 최대한의 성과를 올린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투자행태가 가능했던 건 바로 우리의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외국 자본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국내기업엔 출자총액제한제도,산업자본의 은행주식소유제한,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같은 온갖 굴레를 씌워 옴짝달싹도 못하게 했으니 외국자본이 우리 기업과 금융시장을 마음대로 농락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소버린을 능가하는 자금력을 가진 SK가 사력(死力)을 다해 백기사를 확보해야만 했던 상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정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비상장사의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앞장서 공개하면서 기업들을 매도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는 대주주에게 복수의결권을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제도를 비롯 포이즌 필(신주를 싼 값에 대량 발행해 제3자에게 주는 제도) 황금낙하산(퇴직금을 높게 책정해 이사 교체를 어렵게 하는 것) 황금주(특정 주식에 거부권을 인정하는 것) 등 다양한 형태의 경영권 보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일본 역시 최근의 후지TV 인수시도 사건을 계기로 이런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상장사 지분은 40% 이상이 외국인들에게 장악돼 있다. 언제 또 이런 사태가 재발될 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이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에 대한 방어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