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칼럼] 기업지배구조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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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민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 있는 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경제의 최대 핵심과제인 설비투자의 부진은 금융자본을 위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주주자본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외국자본의 국내자본시장 진출,그로 인한 고배당 압력, 그리고 수익우선의 금융시스템 등이 빚어낸 결과라는 얘기다.
기업 이익이 늘어나도 투자하기 보다는 배당과 경영권 방어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고,은행은 생산을 돕는 기업금융보다 소비를 돕는 소매금융에 치중하고 있으니 성장은 정체되고 경제의 양극화만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년여 동안 SK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소버린 자산운용이 ㈜SK 지분을 모두 매각할 예정이란 소식에 접하고 보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들의 그러한 비판이 전혀 일리가 없지도 않은 것 같다.
더구나 소버린은 2년여 만에 투자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8000억원에 가까운 배당과 주식시세차익을 챙길 것이라고 하니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경영권 분쟁이 결국은 주가를 올려 시세차익을 남기기 위한 고도의 인질극이 아니었느냐는 의구심도 그래서 더한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론이긴 하지만 투명경영의 중요성과 함께 외국자본의 적대적 경영권 탈취 가능성 등에 대한 경각심을 우리에게 일깨워 줬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소버린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다가왔다.
'우리 편'인 국내기업 S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외국자본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런 인상을 심어줄 만했다.
하지만 외국자본이라는 이유로,특히 시세차익을 많이 남겼다는 이유로 흘겨보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소버린과 SK 간의 경영권 분쟁이 증명하듯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 가능성이 큰 데도 이에 대한 정책적 대비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대기업집단이라는 이유로 출자제한과 계열금융사들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소유지분이 많으면 많은대로 문제가 되고,적으면 적은대로 문제가 된다.
소수의 지분으로 대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왜곡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엊그제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 집단 소유지배구조에 관한 정보공개' 에서 보면 정책당국은 '의결권승수'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까지 동원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대기업 총수들이 실제 가지고 있는 주식지분에 비해 계열사나 친인척 등을 동원해 실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체 소유지분을 계산해 보면 몇 배나 많다는 것이다.
의결권 승수라는 것이 학문적으론 그럴 듯해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좋은 기업 나쁜 기업을 분류하는 데 있어서 실증적으로 얼마나 타당한 기준인지는 의문이다. 소유 지배 괴리도가 큰 기업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이 망하기도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보면 특히 그렇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가 지배구조를 연구한 보고서를 내면서 정답이 없다고 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주식소유와 기업지배의 괴리도가 크건 작건 당장의 큰 관심사일 수는 없다.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산물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도 논쟁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SK와 소버린이 경영권 분쟁을 계속하면서 그동안 숙제로 남긴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 가능성, 외국인 투기자본의 횡포,그리고 지나친 고배당 요구와 국부유출 등 여러가지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기업지배구조와 같은 관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까운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 경제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