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10) 주부고객 꽉 잡은 '샴푸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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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용품 홍보 도우미 이광씨 ]
"바다 속 진주가 샴푸에 빠졌어요. 이 샴푸 하나 사시면 제 마음은 고객님 가슴 속으로 쏘옥 빠져들 텐데."
롯데마트 서울 중계점 여성 생활용품 판매 코너의 '청일점'인 이광씨(23)는 자기만의 '느끼한 멘트'로 일과를 시작한다. 주식회사 태평양 소속인 이씨는 다른 '레퍼토리'도 갖고 있다.
"어머니가 이거 하나 사주시면 오늘 장사 너무 잘될 것 같아요."
이 같은 말로도 고객이 물건을 안 사면 행동밖에 남은 게 없다.
다른 샴푸 매장으로 옮기려는 40대 중반의 여성 고객을 붙잡기 위해 스킨십에 착수한다. 한 손으로 살짝 팔짱을 끼고 다른 손은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안마를 시작한다. 이것으로도 미흡한 듯 싶으면 응석부리는 아들마냥 "안 사주시면 저 울어버릴 거예요"라며 읍소작전까지 구사한다.
이 같은 공세에 고객은 두 손 들고 샴푸를 집어들었다.
이씨에게 한번 고객으로 '꽂히면' 단돈 1000원이라도 쓰지 않고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는 특유의 넉살로 단골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 VIP 리스트에 올려진 고객은 이미 100명이 넘는다.
이들이 쇼핑 나올 때마다 허물없이 "신제품 세정제가 나왔다"며 구매를 권유한다.
이씨는 중계동에 사는 주부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처음에는 '재수없는 놈''찰거머리'라고 고개를 내젓는 사람도 많았지만 머릿결 상담까지 해주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대부분 팬이 됐다.
2004년 5월 제대한 뒤 한 달가량 유리창 세척제를 팔다가 같은 해 6월 태평양에 판매 홍보직으로 입사했다.
중계동 매장에 배치된 이후 전국 롯데마트 내 태평양 생활용품 매장 가운데 월간 샴푸 판매량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다. 생활용품 업계에서 판매왕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 '홍보도우미'도 이씨밖에 없다.
잘나갈수록 시기하는 세력도 많아지는 법. 두 달 전 이씨가 사소한 일로 경쟁업체의 여성 판매원과 실랑이를 벌인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 남자 도우미 때문에 여자 도우미들이 모두 사표를 쓰고 나가게 생겼다"는 악성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이씨의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다. "결과로 말하면 된다고 생각해 일에 더 미치기로 했어요."
이씨는 이를 악물고 똑같은 돈을 받는데도 출근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퇴근은 1시간 늦췄다. 주말마다 근무한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평일 중 유일하게 하루 쉬는 날까지 반납했다.
이씨가 이처럼 일에 미칠 수 있는 데에는 자신을 받쳐주는 든든한 후견자들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늘 같은 목표를 갖고 살기 위해 경쟁 회사에 있던 여자친구 임지영씨(24)를 회사 동료로 끌어들였다.
회사 선배 김종화씨(32·여)도 자신과 죽이 너무 잘 맞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씨는 오는 8월부터 시작되는 추석맞이 선물세트 판매를 앞두고 자못 비장하다.
지난해에 기록한 6000만원대 판매액을 깨기 위한 비책을 마련 중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영업은 거짓말이 없어 너무 좋아요.
꼭 영업으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