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일류' 못만든다면 차라리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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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업체인 노브랜드(대표 김기홍)는 1995년 '이샤니 뉴욕'이란 브랜드로 내수시장에 뛰어들었다가 2년여만에 브랜드사업을 접고 의류ODM(제조업체개발생산) 수출전문업체로 변신했다.회사측은 "치열한 국내 브랜드시장에서 중소기업으로서 유통 마케팅 재고 등의 부담을 감수하며 자체브랜드로 경쟁하기에는 무리여서 ODM수출로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노브랜드는 원단소재부터 트렌드분석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 기획하고 개발,고객사가 선택하도록 하는 제안형 ODM시스템으로 수출길을 뚫었다.
이 회사는 1998년 1500만달러,2000년 4500만달러,2002년 8300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1억3000만달러를 수출했다.
현재 DKNY 바나나리퍼블릭 갭 등 유명 의류 브랜드와 타겟 메이 등 할인점·백화점의 자체 브랜드에 의류를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철저한 자체 기획 위주로 경쟁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했고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래선을 다변화하고 속도 있는 생산시스템을 갖춰 고객의 수요에 재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노브랜드처럼 브랜드 창출과 관리에 드는 비용 및 노력을 기술개발에 쏟아부어 ODM의 성공신화를 일궈 나가는 알짜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브랜드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 자체 브랜드로 뛰어들기보다는 제품 및 기술경쟁력을 키워 ODM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이른바 노브랜드 전략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ODM은 제조업체가 개발하거나 설계한 제품을 유통업체나 브랜드업체 등에 공급하는 생산방식이다.
고객이 주문한 대로 제작해 주는 단순 납품 형태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달리 제조업체가 고객사와의 거래에서 제품 생산력과 기술 개발력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해 원가를 낮추고 공급가에 개발비를 추가할 수 있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ODM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의 새로운 사업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양변기 부속품시장의 70%를 확보, 1위 업체인 와토스코리아(대표 송공석)는 1972년 설립 이후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다 1990년대 들어 ODM시스템을 본격 도입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연매출이 도입 이전 30여억원대에서 130억~150억원대로 증가했다.
송공석 대표는 "시장환경이 독자적인 판매보다는 양변기와 연계해 현장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아져 ODM방식을 도입하게 됐다"며 "브랜드 판매나 ODM이나 새로운 기술로 신제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드니 브랜드 관리보다는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절수장치와 관련된 국내외 특허 등 100여건의 산업재산권을 보유할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기술개발형 ODM업체라는 명성이 업계에 확산되면서 최근 미국 양변기업체인 플루이드마스터에 연간 125억원어치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송 대표는 "소규모 ODM업체가 납품회사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시장을 선도할 만한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태평양 더페이스샵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 뿐 아니라 로레알 메리케이 등 해외 유명업체에도 자체 개발한 화장품을 공급하고 있는 코스맥스(대표 이경수),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복 폴로 베네통 등에 자체 디자인한 모자를 공급하며 세계 스포츠모자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는 다다실업(대표 박성배) 등도 ODM방식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대표적인 중소기업으로 꼽힌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