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개혁과 혁신의 차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존 볼턴 전 국부무 군축담당 차관을 유엔대사로 공식 임명하며 "유엔 개혁(reform)에 대한 중대한 논의가 있는데 유엔대사 자리를 더 이상 비워둘 수 없다"고 말했다. 당장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다른 190개 회원국을 기억하라"며 되받아쳤다. 이 문맥에서 보듯 '개혁'의 의미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급진적인 변화,구습의 타파,부정부패 일소 등의 이미지가 강한 것이 바로 개혁이다. 개혁은 그래서 주체와 객체가 극명하게 구분된다. 혁신(innovation)은 개혁과 비슷하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간단히 말하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혁신이다. 운동을 벌이려면 그래서 '개혁'이 아니라 '혁신'운동을 벌여야 한다. 정부가 3년째 벌이고 있는 정부혁신 운동은 잘 잡은 방향이다. 이미 점화기 도입기를 거쳐 이제 실행·확산기에 접어들며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막상 '하위'공직자들을 만나보면 여전히 냉소적인 시각이 많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해오던 운동이 이름만 바뀐 것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혁신담당 고위공직자들이 들으면 억울해할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대민접촉이 많으냐 여부에 따라 혁신 수준의 차도 엄청나게 크다. 혁신 교육을 나가보면 수백명이 눈빛을 반짝이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교육시작 전부터 수면태세를 취하는 이들이 절반이 넘는 조직도 적지 않다. 정부혁신이 고위층의 의지와는 달리 일선에서는 여전히 겉돌고 있는 데는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개혁과 혁신이라는 두 개념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말해 위에서는 혁신을 하고 있지만 아래에서는 그것을 개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혁신이 개혁으로 오해받으면 빚어지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주체와 객체가 갈등을 벌이게 된다. 그 갈등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높다. '국민의례를 생략하면 행사시간을 5분 줄일 수 있다'는 식의 아이디어가 숫자 채우기를 위해 나타나기도 한다. 혁신은 어느새 담당자들만의 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런 간극을 메우는 일은 그래서 정부 혁신에서 '개혁의 냄새'를 빼고 '혁신의 멋'을 높이는 일이 긴요하다. 혁신을 신나는 일로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의 혁신이란 뭔가. 일 잘해서 시민들이 놀랄 만한 행정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시골 본적지까지 가서 떼던 호적초본을 기술발달에 힘입어 인터넷으로 교부받을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혁신이다. 그런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라면 신나서 일할 사람이 훨씬 늘어나게 돼 있다. 최근 행정자치부 정부혁신본부가 펴낸 '혁신의 창'이란 책을 읽다 몇달 전까지는 보기 어려웠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편하고 좋고 가치있는 혁신'이란 표현이다. 표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실제 시민생활을 개선한 사례도 많이 담겨 있다. 정곡을 찌른 표현이고 진일보한 발전이다. 개념이 뭐 중요하겠냐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혁신을 통해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새 서비스를 만들어나갈 때 정부혁신은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의미있는 활동이 된다. 민간부문의 관심이 여전히 적은 한계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