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일터의 블루오션

박경미 십수년을 영업현장에서 일해온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면담하게 됐다. 이 회사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었다. 임금피크제는 원래 고령 인건비를 줄이면서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생산직이나 공무원,또는 은행 등에서 도입할 수 있었던 제도다. 나는 소위 '직무' 값을 어떻게든 영리하게 매김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다른 회사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동기에서 임금피크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는지….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우리 회사 모 차장 얘기를 듣게 됐어요. 어느 날 예고없이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더랍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아니 아빠,구조조정 당한거예요... 그럼 우린 이제 어떡해요?…' 이러더라는 거예요. 이제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구조조정이란 것이 자기 부모에게 다가올 수 있는 일로 생각한다는 거지요. 아,이건 아니지 싶더군요." 그동안 연차도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열심히 출퇴근했을 그 직원과 비슷한 직장인들….뭔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일터에 충성을 바쳐온 직장인들이 이제 맞닥뜨리게 된 고용불안이라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요즘 신문을 보면 직장인 스트레스지수를 조사해 발표하는 기관이 의외로 많다. 얼마 전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가 직장인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비율이 95%에 달했다. 이는 미국(40%),EU(28%)보다 훨씬 높은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많은 조사자료들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상당히 우려할 만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어디서 오는 걸까? 지금 일터를 가진 '복받은' 사람들이 이처럼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기업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기업성과의 향상'은 어디로 가게 될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어느 대기업 인사팀장이 서슴없이 던진 말이 나를 한번 더 놀라게 한다. "곧 잘릴텐데요 뭘…." 사실 내가 일 때문에,혹은 사석에서 만나는 많은 40대 직장인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 그것이다. "곧 잘릴텐데요 뭘…." 참 안타깝다. 그들은 대부분 괜찮은 학력을 가졌을 것이고,한때는 두려울 것이 없이 열심히 일했을 것이며,지금도 한창 능력을 발휘하며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그들이 가진 '막연한 두려움'이 더 열심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적극적인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기업들이 지금까지 많은 투자를 하며 키워 온 그들, 열심히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하는 그들에게 과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임금피크제는 서구의 직무급을 일부 모방하고 있다. 미국에서 온 직무급이란 직무의 가치에 의해 보상을 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연공서열에 따른 보상 정책으로 해마다 급여를 인상해 왔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인건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세월이 흐른다고 끝없이 급여를 올려주는 것을 더이상 안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임금피크제가 구조조정이라는 피흘림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일터에도 블루오션이 있을지 모르겠다. 블루오션에서는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도 앞서갈 수 있다. 우리의 일터 어딘가에 아무도 밟지 않은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숨어 있다면… 직원은 스트레스 없이 열심히 일하고, 회사는 어떻게 더 많은 보너스를 지급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런 곳,그런 일터는 과연 어디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