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더하면 수임 늘려나…"..일거리 줄고 시간 많아진 변호사들

"3개월 동안 사건을 1건도 맡지 못했어." 지난 4일 밤 서울 목동 남부지방법원 앞 한 식당.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온 이모 변호사(39)가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울먹였다. 개업한 지 3년째인 이 변호사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조만간 개인 사무실을 접고 고용변호사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시합격자 1000명 시대가 올해로 5년째를 맞으면서 변호사시장이 지각변동에 들어갔다. 수임사건은 줄어들고 변호사 사무실은 남아돈다. 고용변호사들의 급여 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기업 취직을 원하는 변호사들은 '대리' 직급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최근 강남역 주변에서 열린 변호사 모임에 참석한 한 변호사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못 돼도 '빈변'(청빈한 변호사 모임)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제안을 하자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 사무실 10개 중 2개는 비어 있어=지난 7월 말 현재 개업 변호사 수는 7008명. 매년 700명 안팎의 변호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사건수임 건수가 뚝 떨어졌다. 서울지역 변호사의 경우 1인당 월 평균 사건수임 건수가 1994년 5.34건에서 2003년에는 3.59건으로 줄었다. 사무장을 둘 형편도 못 되는 개업 5년차 이내 변호사들 가운데는 올 들어 몇 개월째 사건 구경도 못한 경우가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타운인 서초동조차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중앙지검 인근의 변호사 사무실 빌딩 외벽에는 '임대'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쉽게 볼 수 있다.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지난해 10% 정도이던 빌딩 공실률이 20%로 2배 가까이 뛰었다"며 "임대료를 줄여보려고 변호사들끼리 사무실을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법무사나 공인중개사 등 유사 직역과의 잦은 밥그릇 싸움도 변호사시장 불경기의 방증이다. 한 법무사는 "변호사들이 건당 30만원 안팎에 불과한 등기나 경매절차에도 뛰어든 지 오래"라며 "우리도 변호사 영역을 넘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사법연수원 휴학하고 사시에 재차 도전=지난해 개업한 김모 변호사는 부동산학원에 다니고 있다. 수강료는 2개월 반 과정에 150만원.1주일 3회 강의를 듣는다. 김 변호사는 "부동산쪽에 특화하려고 한다"며 "업계를 잘 알아야 의뢰인과 얘기가 통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개설한 과목 중 '등기경매실무'와 '건설관계법' 강의는 신청자가 쇄도해 '200명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다. 지식재산권 분야도 인기다. 연세대 지식재산권 석사과정에는 총 50명 정원에 변호사가 8명가량 등록해 있다. 장모 변호사는 "지식재산권 분야가 앞으로 전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고 밝혔다. 오모 변호사는 "내년에 졸업하면 방송통신대 컴퓨터공학과에 또 등록할 예정"이라고 의욕을 불태웠다. 이 같은 분위기는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시 2차 합격자가 발표되는 12월 초 신림동 고시촌은 북적거린다. 불합격생 때문이 아니다. 예비법조인들이 사법연수원 입학을 앞두고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에 다시 몰려들어서다. 연수원 성적이 판·검사 임용은 물론 고임금이 보장되는 대형 로펌 취직 여부를 좌우하다보니 아예 사법연수원을 중도 휴학하는 '재수생'들도 적지않다. 사법연수원 교수는 "올해 연수생 24명이 휴학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은 신림동에 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