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2부 : (1) 교수출신 CEO서 택시기사로


시리즈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의 두 번째 이야기인 '학력의 벽을 넘어서'가 시작된다.


학력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국을 선진국의 문턱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 높은 교육열을 낳은 학력지상주의지만 학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모순을 낳았다.


그러나 학력으로 인한 편견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선 '학력파괴자'들도 적지 않다.


자신만의 블루 오션을 항해하는 도전자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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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출신 CEO서 택시기사 변신 이치수씨 ]


"손을 아래위로 크게 흔들면 십중팔구 단거리 손님입니다.
우리끼리는 2000원짜리로 부르는 고객이지요.


이제 택시 잡는 폼을 보면 직업이 다 보입니다."


택시를 부르는 손만 봐도 그 사람의 직업과 직급까지 떠오른다는 택시기사 이치수씨(49).택시를 몬 지 9개월째에 불과하지만 돈 될 손님을 '척' 골라내고,동교동 삼거리에서 인천공항까지 28분 만에 갈 수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영락없는 전문 택시기사다.
동료들은 그를 이 박사로 부른다.


볼셰비키 혁명과 레닌의 정치사상은 물론 인기그룹 동방신기의 최신 노래까지 모르는 게 없는 데다 벤츠 BMW 아우디 등 외제 차에 대해서도 줄줄 꿰는 해박한 지식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잡학 박사'가 아닌 진짜 박사다.


행정학 박사인 그는 서울 S대에서 10여년간 대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였다.


벤처 붐이 한창일 때는 유명 벤처기업과 인터넷방송 등의 고문과 대표를 지내는 등 잘 나가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 택시 운전대를 잡았을까.


"밑바닥이란 거 정말 순간이더군요.


납품대금으로 받은 거래 회사의 어음이 40%까지 할인되자 경영이 극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살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미련 없이 사업을 접은 그는 "실물경제의 냉혹함을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의 경험은 그에게 세상의 이치를 좀 더 깊게 파고들게 한 동기가 됐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뛰어들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했던 그는 택시를 몰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주위에서 난리가 났다.


돈키호테처럼 튀는 그를 보고 친구들이 미친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이제 택시 인생을 삶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 가고 있다.


'택시운전수 이 박사의 세상보기'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세상을 살아오며 머리와 입만 가지고 살아온 나의 인생….매일매일 다양한 승객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살아 있는 생생한 소리를 기쁨과 애환,때로는 분노의 표출로 뱉어 내는 그들의 이야기를…."


카페에 올라와 있는 머리글로 그가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택시를 몰다 보면 별의별 손님을 만나게 되지만 서울 근교 사찰에서 태운 고시생을 결코 잊을 수 없단다.


"직감적으로 고시생이 극단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7번이나 떨어졌다는 고시생의 염장을 일부러 질렀지요.


오만하지 않았느냐,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답안지 작성 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해 보라고요."


이야기를 듣던 청년이 서울로 오는 동안 계속 울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놓는데 목숨을 끊기 위해 준비한 극약이었단다.


그는 택시를 몰면서 '실물경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값진 체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현장 경제가 아랫목,윗목이 완전히 따로 움직여 돈의 흐름이 꽉 막혔다고 전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이씨는 불쑥 성북동 돈가스 집과 역촌동 제육백반집 중 한 곳을 선택하라며 기자를 이끌었다.
한바탕 세상을 논하던 그는 어느덧 다시 택시기사로 돌아와 있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