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민영화법 부결] 고이즈미식 개혁 '자충수'‥ 의원 반발로 낙마위기

일본 정계에서 '괴짜'로 불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33년의 정치 역정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8일 오후 실시된 우정민영화 법안 표결은 당초부터 부결이 예상돼 왔었다. 야당 반대 속에 여당 내 18명만 반대하면 부결되는 상황에서 20여명의 집권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는 부결될 경우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공언,스스로 선택의 여지를 없앴다. 그가 국회 해산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면 반대파가 돌아설 것으로 판단했는지,실제 해산을 염두에 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고이즈미 총리는 당내 원로와 다수 의원들의 만류에도 불구,이날 오후 임시 각의를 열어 국회 해산을 결정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의원 해산에 반대한 시마무라 요시노부 농수상을 전격 해임하는 등 강경자세를 보였다. 2001년 고이즈미 총리의 집권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탰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지난 7일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 법안 부결과 국회 해산을 연계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아오키 마키오 참의원 의장도 "고이즈미 총리에 불만이 많지만 1년만 참으면 된다"며 당내 반대파 의원들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국회 해산을 결정한 것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면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은 고이즈미 총리는 "구조 개혁 없이 경제 회복 없다"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걸고 여론의 힘으로 총재에 당선됐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을 고려하는 당내 의원 보다는 일반 당원과 국민을 상대로 여론 정치를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내 기반이 없던 고이즈미가 총리까지 올랐던 것도 대중적 인기 때문이었다. 당시 지지율이 10%선 밑으로 떨어진 자민당 입장에서 독선적이지만 카리스마가 강하고,인기가 높은 고이즈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회 해산을 통해 자신을 추종하는 개혁적인 자민당을 만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는 이날 임시각의에 앞서 "표결에 반대한 의원들은 공천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30세의 나이에 정계에 진출한 후 10선의 관록을 가진 정치인 고이즈미의 도박이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오는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전했다. 그는 2001년부터 정치적 역경이 있을 때마다 신사 참배로 돌파구를 마련해왔다. 이번에도 다음달 11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평소 소신대로 신사 참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 언론들은 관측했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는 종전기념일(광복절) 신사 참배라는 강도높은 카드로 위기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장규호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