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진출 해외업체 '대륙 정서' 몰라 쓴맛

중국에 진출한 해외업체들이 중화(中華)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경영활동을 하다가 쓴 맛을 보고 있다. 도시바 맥도날드 나이키 도요타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광고를 내보냈다가 불매운동의 역풍을 맞았다. 하겐다즈 네슬레 등 식품회사들은 중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경영행태로 소비자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기업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중국의 당연한 관습으로 여기고 중국기관에 뇌물을 줬다가 망신을 당한 해외업체도 하나 둘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중국에선 중화(中華)정서를 소홀히하면 큰 코 다친다"고 지적한다. ◆중국인의 자존심 자존심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대륙정서의 한 단면이다. 일본 도시바는 이런 정서를 소홀히 한 탓인지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마케팅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도시바가 자사 제품 중 하나인 프로젝터에 마오쩌둥의 초상이 그려진 위안화를 부착한 게 사단이 됐다. 일련번호가 찍힌 위안화를 붙인 프로젝터가 진품임을 강조하려는 게 도시바의 의도였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을 제품에 이용하자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중국 소비자들은 마오쩌둥을 상업화에 이용했다며 도시바를 일제히 비난했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을 위반했다며 도시바를 몰아세웠다. 도시바는 중국 총대리상인 중국 기업이 제작한 광고라고 해명했지만 기업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앞서 나이키는 작년 말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가 중국 전통 복장을 한 쿵푸 도사와 두 마리의 용을 차례차례 무찌르는 내용의 TV광고를 했다가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 중국 당국으로부터 광고금지 조치를 당했다. 도요타도 2003년 중국을 상징하는 돌사자가 신형 자동차에 거수경례를 하는 내용의 잡지 광고를 했다가 물의를 빚어 자진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중국에서도 소비자는 왕 소비자의 반응에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혼쭐난 외국 업체도 있다. 세계 1위 식품업체인 네슬레가 그런 경우다. 중국 보건당국은 네슬레가 중국에서 판매해온 분유에 기준치를 초과한 요드가 들어갔다고 공개했지만 네슬레는 무시했다. 네슬레는 국제기준에 맞춰 생산한 분유를 판매했기 때문에 중국 보건당국의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네슬레의 반응은 중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태도로 비쳐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세계적 아이스크림 생산업체인 하겐다즈는 무허가공장에 하청을 준 데다 무허가공장이 공공화장실 바로 옆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져 중국 소비자들의 반발을 샀다. 중국 소비자들은 하겐다즈가 미국에서도 화장실 옆에 공장을 지었겠느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중국법인 책임자가 하청공장 위치에 문제가 있었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중국에서 '아이스크림의 롤스로이스'로 인정받던 하겐다즈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다. ◆뇌물 '관시'는 금물 뇌물을 중국 특유의 관시(關係)로 활용하려다가 망신살이 뻗친 외국 기업도 적지 않다. 지난 5월 미국 의료장비 업체인 DPC는 중국 병원에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로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다. DPC 중국 지사는 조사과정에서 병원 직원들에게 10년에 걸쳐 모두 162만달러 상당의 뇌물을 줬다고 실토했다. 중국 언론은 DPC의 뇌물 제공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이 회사의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겨졌다. 중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외국 기업의 부패문제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월마트가 쿤밍에 진출할 때 인·허가 당국의 관리 부인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 중국 언론에 보도된 게 대표적이다. 중국 언론들은 월마트의 뇌물 제공을 보도하면서 '부패,외국 기업 생존의 숨겨진 규칙' '외국 기업,뇌물로 시장을 산다'는 등의 제목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국 언론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 당국에 적발된 50만위안(6250만원) 이상의 부정부패 사건 중 64%가 외국 기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외국 기업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것은 중국 특유의 관시(關係)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박승호 삼성경제연구원 중국사무소장은 "현지화 경영은 외국 기업에 필수적"이라면서도 "중국 현지화 경영전략과 글로벌 기준의 경영 방식에 균형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