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목욕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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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사람마다 생각은 물론 생활습관도 다르다.
목욕만 해도 따끈한 물에 몸을 푹 담궈야 직성이 풀린다는 탕파와 아침 저녁 샤워면 충분하다는 샤워파가 있다.
탕파의 경우 공중목욕탕을 자주 이용하게 마련인데 문제는 공중탕의 분위기다.
두세 사람이 모여 큰 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드는가 하면 사우나실에서 몸에 오일을 바른다.
사우나실에서 나오자마자 찬물에 풍덩 뛰어들어 신나게 물장구를 치는가 하면,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녀도 엄마가 말리기는커녕 대견하다는 듯 쳐다본다.
수거함이 있는데도 쓰던 수건을 아무데나 던져둔 채 나간다. 샤워할 때 물이 산지사방으로 튀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등을 밀어주던 예전의 목욕탕 풍경은 오간데 없다.
남탕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족욕이나 반신욕을 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마다 온몸을 흔들며 "크으, 캬아" 소리를 내거나 물장구를 친다고 한다.
목욕탕은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만나는 곳이다.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공동의 공간임도 물론이다.
그런데도 함부로 행동하다 누군가 조심해달라고 말하면 수긍하지 않고 되레 큰소리친다. 당연히 "미안하다"고 할 것이라 기대했던 사람은 당황스럽고 무안한 나머지 얼른 그 상황을 피해버리고 그렇게 되면 문제의 인물은 반성은 고사하고 보란 듯이 더 극성을 부린다.
최소한의 공중도덕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처지는 무시하는 게 마치 힘있는 사람의 태도인양 구는 건 목욕탕에 그치지 않는다.
대대적인 캠페인 덕에 에어컨까지 놓인 공중화장실 바닥은 휴지조각 범벅이기 일쑤다. 소음 때문에 아래 위층이 원수가 되는가 하면, 막힌 교차로에 진입해 사방 모두 꼼짝 못하게 만든다.
운전 중 피우던 담배꽁초를 차 밖으로 휙 내던지고,장애우를 위해 턱을 없앤 걸 이용해 인도에 떡 하니 주차시키는 얌체도 있다.
뿐이랴. 남이야 어떻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쟁점사안을 놓고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사태를 빚는다. 보수와 진보,빈부와 노사,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등 우리 사회 전반의 투쟁 구조가 심화되는 것도 이런 막무가내식 제몫 챙기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목욕탕 예절을 비롯한 공중도덕과 질서는 사회적 약속이자 사람살이의 최소 덕목이다. 작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다 보니 매사에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약속의 파기는 모두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든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나는 안그래야지" 하기보다 "너도 당해봐라" 하기 쉬운 까닭이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은 "남 생각하면 안된다, 바보같이 굴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아이가 떠들지 못하도록 "쉿"하고 입을 가리는 사람 덕에 지켜진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쓴 박노자씨는 "대인관계와 행동양식까지 현대화하지 않으면 진보적 이념은 추상적 공론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립되도록 할 말이 있으면 떳떳하게 하고,약속 위반에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급하다.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