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취급받던 희귀병, 3억대 배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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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으로 치부되거나 병의 원인을 몰라 치료 혜택은 물론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희귀난치병들이 중증질환으로 인정받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총 5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각종 희귀병 환자들이 줄지어 유사소송을 낼 전망이다.
인천지방법원 민사1부(항소부)는 최근 택시 사고로 입은 외상이 악화돼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게 된 서모씨(여·45)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3억37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의학계에서조차 생소한 CRPS에 대해 법원이 중증질환으로 인정,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CRPS 환자들은 기왕증(원래 앓고 있던 병) 환자로 취급되거나 증상에 비해 장해 정도가 극히 낮게 평가돼 왔다.
서씨는 지난 2000년 3월 택시에서 내리다 택시가 출발하는 바람에 발목 관절을 다쳤다. 병원은 단순외상으로 취급해 조기치료 기회를 놓쳤고,그 증상이 점점 악화돼 극심한 통증이 무릎까지 번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측은 치료비를 요구하는 서씨를 '꾀병' 환자라며 치료비 지급을 거절하고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1심에서 서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사실상 택시연합측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원심의 100배가 넘는 3억3700만원을 물어주라며 서씨의 승소를 인정했다.
군 복무를 하다가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난치성 질환인 루푸스가 발병,의가사 제대한 박모씨(23)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연금을 요청했으나 국가보훈청은 유전적인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이유로 박씨의 병을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6월 박씨가 한여름 땡볕에서 계속 훈련을 받았고 군 복무 중 겪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잠복돼 있던 루푸스병 인자가 촉발된 것인 만큼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또한 땡볕 훈련 등 군생활과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이들 소송을 대리한 서상수 변호사는 "희귀병 환자들은 의료사고 및 교통사고가 나도 보험회사 등에서 채무부존재 소송이나 조정신청을 남발해 치료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아왔다"며 "이번 판결이 희귀난치성 질환 연구 및 사회적 인식 변화에 큰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