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핵심기술 문단속 정부가 나서야

최병현 요즘처럼 기술진보가 빠른 시대에 국가경쟁력은 핵심기술 보유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중국기업들의 인터넷을 통한 산업 스파이 활동이 미국 호주 영국 등에서 잇따라 발각되면서 세계 각국은 핵심기술 유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핵심기술 유출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쟁력 훼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가 산업기반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국부유출의 관점에서 이해돼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핵심기술 유출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IT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몇몇 국내 핵심기술은 세계 기업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이후 TFT-LCD, 반도체 등 핵심기술 유출 적발사례는 37건, 피해규모만도 약 50조원에 이른다. 특히 2004년 한 해 동안 적발된 건수는 26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미국 기업들도 핵심기술 유출로 연간 2000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고 있으며, 글로벌 1000대 기업의 약 60%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핵심기술을 빼내는 수법도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고도화되고 있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는 지팡이, 붓 뚜껑 등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핵심 인재의 스카우트, M&A, 컴퓨터 바이러스 등을 활용하는 첨단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핵심기술은 핵심 인재 스카우트, M&A를 통해 중국으로 급속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 기업들은 자동차, 전자는 물론 섬유분야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핵심기술이라면 국내의 경영진, 엔지니어 등을 고액 연봉 조건으로 유혹하거나 기업 자체를 통째로 삼키려 하고 있다. 최대의 전자레인지업체인 거란쓰가 2003년부터 작년 말까지 한국인 전문가를 상당수 스카우트한 점이나,징둥팡(BOE)의 하이닉스 LCD사업 인수,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중국 등 각국의 산업 스파이들은 '트로이 목마'와 같은 악성프로그램들을 기업 컴퓨터에 침투시켜 핵심기술을 빼내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최근에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훨씬 정교해지면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우려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현재 기업정보를 빼내기 위한 변형 프로그램만도 인터넷상에 10여개가 떠돌고 있다고 한다. 핵심기술 유출의 폐해는 기업의 노력만으론 극복하기 어렵다.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먼저 기업들은 핵심기술의 보안을 더욱 강화하고, 핵심 인재의 관리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핵심기술을 명백하게 정의하고, 핵심 인재들이 스카우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내부평가, 보상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M&A에 대해서도 개별 기업의 이해득실 차원이 아니라 국부유출이라는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사이버 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 스파이 활동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함께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법률과 제도를 보완, 강화해야 한다. 미국 일본 등이 산업 스파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CIA와 같은 정보기관의 기능을 확대 개편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국정원 등의 대응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핵심기술의 유출 방지 노력은 국부의 유출을 막고, 기업의 생존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 등 경쟁국가들은 우리의 핵심기술을 공격 목표로 상시적인 산업 스파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개발된 기술을 기업, 나아가서는 국가의 자산으로 지키기 위한 문단속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