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기업 조기매각 논란] 늦추면 제값 못받아 vs 국익 고려해야

채권단이 주주인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한통운 LG카드 등 구조조정 기업의 조기매각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재정경제부 등 정부 일각에서는 "경영 정상화가 이뤄진 데다 주가도 채권을 회수할 정도로 충분히 오른 만큼 매각을 지연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손실이 날 수 있을 뿐더러 채권단이 주인노릇을 계속할 경우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반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국내에서 인수주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시장논리(가격)대로 매각할 경우 제1금융권(은행)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듯 알짜 제조업마저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시장논리보다 국가 전체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상화된 기업은 빨리 파는 게 원칙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공적자금이 들어갔거나 출자전환을 통해 은행이 지분을 갖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의 매각이 지연되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제 값 받기라는 명분으로 매각이 지연되지 않도록 매각과 관련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재경부는 매각시기,가격 등 매각기준에 대한 용역을 금융연구원에 의뢰했고 금융연구원에서는 "채권 회수에 손실이 나지 않고 2분기 이상 영업이익이 흑자를 낼 정도의 경영정상화를 달성했을 때"라는 원칙을 내놓았다. 금융연구원은 또 "정상화 이후에도 채권단이 계속 주인으로 남아 있을 경우 채권자의 권리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기업혁신이나 정상적인 기업활동 등이 위축돼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채권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채권단이 부실정리와 구조조정을 하면서 보유하게 된 주식은 가급적 빨리 파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외국계펀드 관계자는 "반도체와 조선 등 경기민감 업종의 M&A는 매각시기를 늦추다보면 제값받기는커녕 뜻하지 않은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지금처럼 반도체 조선 건설 등의 경기사이클이 회복(호황)기 때 매각을 서두르는 게 채권단 이익 측면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제조업 '안방' 내줄 수도 이 같은 조기매각론과 달리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서는 '국익'을 고려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 대우조선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한통운 LG카드 등 매각대상 기업이 모두 업계 1,2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하이닉스(반도체)와 대우조선(조선)은 '국가 기간산업'이나 마찬가지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국내 PEF(사모투자펀드) 등 대항마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인 찾아주기에만 급급해 성급히 매각할 경우 기간산업마저 외국자본에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대우조선을 매물로 내놓으면 조선업종을 10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중국이 가격불문하고 인수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산은 관계자는 "이미 제1금융권이 외국자본의 지배아래에 넘어간 상황에서 알짜 제조업체까지 외국자본에 빼앗기면 산업공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경제를 지탱하는 금융과 산업 두 축 가운데 금융을 잡지 못했다면 제조업이라도 갖고 있어야 우리 경제의 미래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도 "매각을 서두르되 은행산업에 이어 알짜 제조업마저 외국자본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채권단 주장에 동조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전 산업은행 총재였던 정건용 J&A파스 회장은 "국익을 생각하는 채권단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예전과 달리 국내자본도 이미 성숙돼 있다"면서 "국내에서 원매자가 나오지 않아 매각을 연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매각작업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국가기간산업으로 보호해야 할 기업이라면 입찰자격에 제한을 두는 등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