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서울광장

변화란 서서히 이뤄지지 않는다.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에 따르면 그것은 저기압성 대기 불안정 상태가 토네이도로 바뀌듯 순식간에 일어난다. 어쨌든 변화란 누군가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 생겨나기만 하면 불가능할 것같던 일을 현실로 바꿔놓는다. 근래 달라진 서울 강북의 모습은 변화의 힘을 전하고도 남는다. 청계천 복원은 물론 시청과 광화문 숭례문 일대에 생겨난 횡단보도는 대표적인 사례다. 시청 일대는 종래 걸어서 다닐 수 없는 곳이었다. 시청에서 프라자호텔까지 가는데 지하도 두 곳을 오르내려야 했다. 덕수궁과 롯데호텔 어느 쪽으로 가려 해도 지하도를 건너지 않으면 안됐다. 광화문과 숭례문 쪽도 마찬가지.동서남북 어느 쪽도 땅 위론 다닐 수 없었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이나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아예 통행금지 구역이었다. 그러던 게 시청앞 도로 개편 및 숭례문광장 조성과 함께 만들어진 횡단보도들로 산지사방 죄다 지하 아닌 지상 통행이 가능해졌다. 시청에서 덕수궁,신한은행에서 북창동과 남대문시장 쪽으로 가는 길도 열렸다. 자동차 위주로 돼 있던 길이 사람 위주로 되돌려진 셈이다.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걸 왜 그렇게 오래도록 시민들로 하여금 지하도를 들락날락거리게 했던 건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초보 운전자들이 방향을 잃곤 했다는 시청 앞 인터체인지를 없앤 추진력도 놀랍다. 그러나 서울광장에 대해선 생각해볼 대목이 적지 않다. 서울의 상징인 시청 앞에 잔디 광장을 만들어 문화 행사를 연다는 발상은 근사하다. 하지만 이틀에 한 번꼴로 대규모 행사를 여는 곳에 잔디라니. 결국 지난해 5월 개장 이후 잔디 관리비로만 2억원 남짓 썼다고 한다. 행사용이면 잔디 대신 우레탄 등을 이용한 탄성 포장재를 까는 게 맞다. 밤이면 인파를 모으는 일에 앞장서면서 낮동안엔 잔디가 상하니 굽 있는 구두를 신은 여성은 들어가지 말라는 식의 행정은 터무니없다. 문화도시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도시여야 한다. 상징성 때문에 세금을 낭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