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을 찾는 변호사] ⑨공학전문 최규호 변호사


"5기통 엔진에서 인젝터 2개의 연료 분사 압력이 차이가 나서 진동이 심한데 해결 방법은 없을까요."


"분사 압력 차이 때문에 크랭크샤프트 바이어스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컨트롤 랙에 대한 컨트롤 슬리브의 위치를 조절하면 오차가 없어질 거예요."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외합동법률사무소.


복잡한 부품도면이 뜬 컴퓨터 화면을 사이에 두고 최규호 변호사(36·사시 44회)가 고객인 30대 남자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이날 연료 분사장치 결함으로 인한 엔진 진동을 화두로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소비자 피해에 따른 위자료 계산 공식에 이른 뒤에야 겨우 끝이 났다.


토론을 하면서 자동차공학 개론이라는 두꺼운 책을 뒤적거리던 최 변호사는 곧바로 'VISIO'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소장에 필요한 별도의 부품도면 설계를 위해서다.
익숙하게 전문가용 소프트웨어(SW)를 조작하는 솜씨가 영락없는 기술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마추어 기술자가 아닌 실제 공학박사다.


사법연수원 2년차 때인 지난해 초 '신경회로망 구조 최적화를 통한 비선형 적응비행 제어시스템 설계'라는 복잡한 제목의 논문으로 모교인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의료소송 전문가인 전현희 변호사 사무실에 합류한 뒤에도 모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한 소비자 소송을 첫 작품으로 삼았다.


인공지능을 응용한 자동항법 제어장치를 논할 정도이니 단순한 기계 부품의 결함을 밝혀내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그는 부품 안전도 계산을 거의 마무리지은 만큼 우선 자동차 회사에 리콜을 요구한 뒤 응하지 않을 경우 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그는 처음부터 공학 전문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뒤로 한 채 사법고시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그의 꿈은 판사였다.


절친했던 후배가 데모를 하다 잡혀가 모진 고생을 당하는 것을 보고 판사가 돼 올바른 사회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박사학위까지 포기하고 사법시험에 뛰어든다는 힐난이 들리더군요.


의대 편입이나 사법시험을 보려는 이공계생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죠.


그래도 옳고 그름을 직접 판단하고 싶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쏟던 그가 자신의 블루오션 시장을 찾은 것은 한참 뒤인 판사시보 교육 때였다.


"공학박사 경력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면 판사보다는 변호사가 좋겠다"고 격려해준 당시 우광택 부장판사의 조언이 자극제였다.


연수원 1년차 종합성적 상위 10% 이내에 들던 그가 판사 임관의 뜻을 접고 자신만의 '항해'를 시작한 동기다.


"아직 경력이 일천하지만 미사일이나 전투기 항공부품 수출입과 관련한 법률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경력이 쌓이면 관련 법 분야에서 국가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는 사법고시 합격 이전에 이미 항공우주연구소와 함께 중형 과학로켓 유도제어 프로젝트를 4년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런 이력 탓인지 특허기술이나 지식재산권 소송 등에 관심이 깊다.


특히 빈발하는 국제분쟁에서 국내 변호사들이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있다.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99년도에 이미 사시 정원이 크게 늘어나 변호사로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타이틀만 가지고 폼 잡으려 했다면 시작도 안했을 것입니다.


공학 분야만큼은 최고가 돼야 친정(공대대학원)에도 면목이 서지 않겠습니까."
최 변호사는 "앞으로 외국 기업과의 특허분쟁에서 맹활약하는 공학 전문 변호사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글=이관우·사진=허문찬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