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그라운드 제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을 결정적으로 항복하게 만든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었다. 시가지는 온통 폐허로 변했고 사상자만도 수십 만명이었다.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피폭지점을 두고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 보도했다. 이후 그라운드 제로는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급격한 변화의 중심이라든지,종교적으로는 성지 예루살렘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더 광범위하게는 우주의 시작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당초 군사용어로 쓰였던 그라운드 제로는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WTC)가 붕괴된 지점을 지칭하면서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 그라운드 제로가 테러 발생 4주년을 맞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치 영화처럼 생중계된 참사의 현장이기에 그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시적인 첫 번째 사업은 지난주 기공식을 가진 세계무역센터 터미널공사다. 이 터미널은 22억달러가 드는 대공사로 도심교통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무려 120억달러를 들여 세계무역센터를 재건축하는 프리덤 타워도 얼마 전 최종 설계도가 확정돼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몇 년 후면 가장 비극적이었던 현장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될 게 분명하다. 그라운드 제로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상상키 어려운 재난을 당한 뉴올리언스에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뉴올리언스가 참담한 재난을 당하면서 미국 사회에 잠재된 갈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일각에선 미합중국의 초심을 강조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각기 다른 인종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모여 하나의 미국을 건설했고,누구나 성실히 노력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개척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그라운드 제로 역시 또 하나의 미국 정신으로 서서히 자리잡아 가는 분위기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