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뉴스확대경] 물가의 두 변수 - 유가와 환율

추석 시장이 한산하다. 조기 배 같은 일부 제수용품 값이 두 배로 뛰었다는 푸념도 들리지만 명절 대목 분위기가 확실히 예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서비스업활동지수 같은 경제지표 호전도 경기회복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덕분에 이번 추석은 물가에 대한 걱정 없이 지나갈 것 같다. 문제는 그 후다. 석유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연말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미국 서부텍사스 산(産) 중질유(WTI) 기준 배럴당 30달러대에서 오르내리던 국제유가가 그 해 여름이 지나면서 급등하기 시작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50달러를 돌파하더니 지금은 7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1년여 만에 두 배 오른 셈이다. 국제유가 급등은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걸쳐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원재료 값이 올라가고,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비용이나 난방비 물류비 부담이 늘어난다. 실제로 1,2차 석유파동 당시인 지난 1974년과 1980년에 우리 경제는 각각 24.3%와 28.7%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 시중에 공급할 때 생긴다. 경기가 좋아 정부가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근로자 임금 인상이 원가를 상승시킬 때도 물가가 많이 오른다. 아울러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도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직면한 것은 바로 세 번째,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다. 지난 8월까지도 소비자물가지수나 생산자물가지수 같은 물가지표는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8월과 비교해 볼 때 소비자물가는 2%,생산자물가는 1.4%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 1,2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이 평균 3~4%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최근 몇 달간의 물가 움직임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과거 경험을 봤을 때,높은 유가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은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지금의 고유가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장기적으로 물가 걱정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최근 유가 급등이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유가 급등은 전쟁이나 정치적 분쟁 같은 일시적 돌발적 계기가 원인이 되어서 빚어진 전세계적인 수급불안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유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중국 등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국가들의 원유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원유 생산 능력은 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한편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어느 정도 줄여주는 것이 환율 하락이다.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작년 초 1160원대에서 최근 102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면서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값어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은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꼭 좋은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물가에 관한 한 효자다. 환율이 떨어지면 원화 기준 원유 수입대금이 전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국제 원유 가격이 30% 오르고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한다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인상 폭은 20% 안팎에 그친다. 당분간 국제유가는 고공행진을 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반면 환율의 추가 하락 폭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환율 요인이 물가상승 압력을 줄이는 데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미 물가불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나라도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 가치 하락과 물가불안은 심각한 수준이다. 인도네시아는 유가 상승에 따른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로 석유 소비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보조금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부 재정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그 결과 물가를 잡지 못함은 물론 정부의 대응능력 부재가 노출되면서 외환시장의 신뢰도 잃어버린 것이다. 세계에서 석유 소비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중국도 석유 소비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편 태국은 자국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 불안이 우려되자 지난 7월 석유 소비 보조금제도 시행을 즉각 중단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일본 홍콩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이 여전히 석유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특히 인도네시아나 태국보다 발전단계가 앞선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석유 소비량이 선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이 고유가의 파도뿐 아니라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물가불안의 위협을 넘는 데도 중요한 원동력이 됨을 시사하는 지적이다. 배민근 연구원 hyba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