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짜리 멸치세트만 찾아요" .. 썰렁한 추석경기 현장르포

추석을 일주일 앞둔 11일 서울 중부시장.멸치 오징어 김 굴비 등의 도소매 점포 1000여개가 밀집한 국내 최대 건어물시장이지만 추석 대목을 실감하기 힘들었다. 시장골목에는 구경 나온 듯한 노인들만 눈에 띌 뿐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고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황모씨(53)는 "몇년 전만 해도 명절 대목이면 하루 수백 상자씩 팔곤 했는데 올해는 하루 열 상자 팔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멸치 값까지 예년보다 30~40% 올라 손님이 더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도매상가들이 밀집한 동대문,남대문시장과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도 추석 경기가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동대문에서 10여년째 의류 도·소매업을 하고 있다는 강신자씨(45)는 "대목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대목요? 그건 딴 나라 얘기 아닌가요"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P상회 변모씨는 "태풍의 영향으로 사과 배 등 제수용 과일 값이 많이 올랐다"며 "손님들이 가격을 맞추려다 보니 중·저가 쪽으로만 손을 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목 경기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백화점 할인점도 마찬가지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판매단가가 떨어져 올 대목 매출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다. 특히 기업들이 주문하는 선물도 지난해보다 단가가 10~20% 정도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 진창범 식품 부문장은 "올해는 5만원 이하 멸치 등 건어물 세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121%나 늘어날 정도로 실속형 선물에 관심이 높다"고 밝혔다. 윤주학 신세계이마트 은평점 식품1팀장은 "기업체 대량 구매용으로 인기가 높은 멸치세트의 경우 지난해엔 3만원대가 주로 나갔지만 올해는 2만원 이하 상품만 찾는다"면서 "올 추석 선물 매출이 지난해보다 한 자릿수라도 늘어나면 다행"이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마트 은평점은 지난해에는 2만~3만원대 상품 세트가 가장 많이 나갔으나 올해는 1만~2만원대의 조미 김,멸치 세트가 가장 인기가 높다. 인천 남동공단 인근에 있는 롯데마트 연수점 관계자는 "전체 판매 물량의 절반이 법인 고객 주문인데 올해는 법인들이 주문물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단가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9900원짜리 비누세트를 단체 구입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백화점들도 예약 판매 선물의 단가가 하락했다. 현대백화점이 8월 26일부터 이날까지 판매한 선물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보다 판매 단가가 약 20% 하락했다. 상품본부 정연성 정육담당 바이어는 "지난해에는 25만~30만원짜리가 가장 인기 있었으나 올해는 20만원 안팎이 잘 나간다"고 말했다. 강창동·안정락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