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 레스토랑 '유리안'운영 일본인 요리사 호시노씨


"한국의 젊은이들은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하고 편한 직업만 추구하는 것 같아요. 중국이나 동남아등 인근 아시아로 조금만 눈을 돌려도 도전해볼 만 한 분야가 너무도 많은데 말이죠."


'프로에게 국경은 더 이상 의미 없는 금 긋기'라는 인생좌우명을 세우고 동아시아 요리투어(?)중인 일본인 요리사 호시노 츠토무(37).
그는 지난 2002년 6월 한국의 모 패션업체 회장에게 이끌려 한국에 왔다."그 분이 제가 일하던 긴자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맛보고는 대뜸 청담동에 레스토랑을 차려주겠으니 맡아달라고 제안하더라구요."


중국 광동요리에 일식이 섞인 '아시안 퓨전'요리의 새 지평을 열어보겠다는 야심에 불타던 그는 주저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요리까지 섭렵하면 한중일의 맛이 조화를 이룬 '동아시아 퓨전 스타일'을 자신의 고유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급료수준은 솔직히 별 문제가 아니었다.
호시노씨는 처음 레스토랑 '블루폰드'에서 시작해,한일합작기업 SG링크가 문을 연 '시오리'를 거쳐 지금은 자신이 절반을 투자한 '유리안'에서 '수석 쉐프'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의 맛감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기시작했고 그의 요리솜씨에 반해 옮겨가는 레스토랑마다 따라다니는 '골수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만난 최악의 손님은 '고추장 아저씨'.
"정성껏 데코레이션한 제 요리를 조금 맛보더니 느끼하다며 주머니에서 튜브식 고추장을 꺼내 막 뿌려대는 거였어요"


너무 놀라 일본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더 놀라운 답신이 왔다. '도쿄에서도 그런 한국인 손님을 심심찮게 본다'는 내용.


외식업 전문가인 이동욱 리앤코시스템 부사장은 "그의 요리에는 '기합'이 들어 있다.
그의 요리는 중식도 일식도 아닌 '호시노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부사장은 "인간적으로 호시노씨는 좀 까다로운 사람"이라며 "그래서 친해지기 어렵지만 요리사로서는 되레 좋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한식당을 탐방한다.


"한국 사람들이 '그래도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라고 말할 때,처음엔 의아했죠."


그러나 지금은 호시노씨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여러 곳을 다녀보며 소문난 요리도 많이 먹어봤지만,그에게 최고의 한국요리는 '여자친구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란다.


한국요리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담아내는 사람의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제 맛이 날 수 없다는 것.


"일본에서는 주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테크닉'을 배웠다면,한국에서 배운 것은 '가족의 온기'를 그대로 요리에 전하는 '정성'입니다." 그래서 호시노씨는 '유리안'의 컨셉트를 '당신의 두 번째 집'으로 잡고 매장 인테리어도 보통 가정집의 거실처럼 꾸몄다.


유리안을 성공시키고 난 후 그는 태국으로 건너 갈 계획이다.


그의 한국 생활은 어떨까.


차를 좋아하는 호시노씨는 한국에 오자마자 BMW를 한 대 구입했다.


일본에까지 화려하다고 소문난 청담동 거리를 구경하고 싶어 차를 몰고 나갔다.
"3일만에 5번이나 접촉사고가 났어요. 직각으로 끼어드는 차량을 피하느라 운전은 늘 전쟁 같았습니다." 이런 고초를 겪은 후 그는 이제 한밤중이나 새벽이 아니면 절대로 차를 몰고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차기현기자 khcha@hab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