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조폭' 국가론과 저항권

강만수 국가정보원의 도청과 감청 문제로 나라가 어수선하다가 이어서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기 위해"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8ㆍ31 부동산대책이 '세금벼락'과 함께 나오고 나서 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 이래 많은 국가론이 있어 왔지만 국가는 "특수한 권력조직이며,어떤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폭력조직"이고, "영토,충성심,그리고 배타성의 개념에 기초를 두고,폭력의 합법적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국가론,즉 조직화된 폭력을 중심논리로 하는 '조폭' 국가론이 현실적이고 실감이 더한 것 같다. 국가권력은 합법적인 폭력으로 인식되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반대편으로는 시민의 저항권이 인정되고 있다. 국가권력의 억압적 폭력성은 시민의 동의에 의한 합법성을 전제로 하는 반면,시민의 동의가 없거나 합법성이 없으면 시민은 저항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적법절차를 거치고 '폭력'의 강도가 지나쳐 합법성이 훼손됐던 독재권력에 오래도록 저항해 왔던 우리에게 저항권은 친숙하다.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 필패"의 정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정당하다. 납세는 시민의 당연한 의무이고 부동산투기를 두둔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무거운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소득세를 물게 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투기꾼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주변머리 없이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 살다가 갑자기 '세금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있자니 보유세가 힘겹고 떠나자니 양도세가 무거워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됐다. 정부의 정당성은 원인 제공자에 대한 징벌 없이 결과적인 수혜자들에게 징벌적인 제재를 가함으로써 훼손되고 있다. 투기가 일어나게 만든 것은 정책에 실패한 당국자와 이를 이용한 투기꾼이다. 400조원에 가까운 부동자금은 누가 만들었으며 투기꾼에게 주택자금을 대출해준 사람은 누구인가. 학교선택권을 박탈하고 교육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찾아 가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빌딩 가진 큰 부자는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고,해외에 조기유학을 보내지 못해 강남이라도 선택한 중치기들만 고달프게 됐다. 종합부동산세를 한다면서 빌딩 가진 부자를 빼거나,전체 국민 중 16만명만 선택적으로 과세하는 건 공평성과 보편성의 조세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투기소득을 과세하는 방법도 1년에 생긴 것과 10년에 생긴 것은 달라야 한다. 선진국 수준의 보유세 1%라는 명제도 선진국의 국토가격이 GDP와 1:1 전후이고 주택가격의 연간소득 배율이 3배 정도인데 반해,우리는 국토가격이 GDP의 3배 정도이고 주택가격의 연간소득 배율이 7배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 가중치를 감안하지 않은 수학적 오류가 아닌가 한다. 선진국에서 재산세는 교육과 치안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대가의 성질이 강하고 주민이 합의해 많이 내는 것이지 강압적으로 많이 받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사실인식의 오류도 있는 듯하다.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장치는 종합부동산세 수입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 '이해관계집단'을 만들고 이 집단의 '저항권'을 담보로 하겠다는 것이라 한다. '가해자'는 실패한 정책당국자와 이를 악용한 투기꾼이고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 '세금폭탄'을 맞은 보통 시민은 '이해관계집단'과 마찬가지로 정부정책의 '피해자'다. 국민을 통합시켜 나가야 할 정부가 '저항권'을 부추겨 '피해자' 간에 투쟁하게 만드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 같다. 상대적 박탈을 당한 '이해관계집단'은 '세금폭탄'을 맞은 시민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실패한 정책의 교정에 의해 보상 받아야 하고,정부는 국가경영의 근본이 되는 조세징수권을 재정목적 이외에 남용해서는 안 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