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합의 20년] 美ㆍ日서 美ㆍ中으로 통화전쟁 2라운드
입력
수정
미국이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엔고(高)를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던 '플라자 합의'가 22일로 20주년을 맞는다.
1985년 9월22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 5개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 따른 세계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였다.
당시 이들은 달러 가치를 낮출 목적으로 정부 간 협조와 중앙은행 개입을 통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키로 합의했다.
말이 합의일 뿐 사실상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이는 국제 통화전쟁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달러당 235엔이었던 엔화 가치는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수직 상승,20년 뒤인 현재는 2배가 넘는 111엔대(9월20일 기준)로 치솟았다.
일본은 엔고로 이후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긴 불황의 터널을 겪기도 했지만,대신 세계 무대에서 리더그룹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정치·외교적 보상을 받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국제시장에서는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미국의 공격대상이 일본 엔화에서 중국 위안화로 바뀌었을 뿐이다.
강(强)위안화를 통해 달러 가치를 낮추려는 제2차 통화전쟁이다.
◆거세지는 美의 위안화 절상 압력
미국이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20년 전 일본처럼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7월21일 위안화를 2.1% 평가 절상했지만,대미 수출이 여전히 줄지 않아 미국으로부터 줄기차게 추가 절상을 요구받고 있다.
위안화 환율이 7월 절상 당시 달러당 8.11위안에서 현재 8.088위안 안팎으로 두 달 동안 불과 0.27% 절상되는 데 그쳐 0.3%인 하루 변동폭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것 역시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은 특히 10월 중순께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위안화 추가 절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미국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재무부 환율보고서가 나올 10월에 가서도 위안화가 현재 수준에 머무를 경우 미 정부로선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모종의 조치가 강구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23~24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존 스노 재무장관이 중국측에 위안화 절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이 회의에 진 런칭 중국 재정부장과 저우 샤오촨 인민은행장을 초청한 상태여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도 "인위적인 추가절상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강 인민은행 부행장은 지난 15일 "중국은 위안화 환율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능력이 있다"고 말해 미국측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제2의 플라자합의 주장도 대두
미·중 간 힘겨루기가 팽팽한 가운데 선진국들이 다시 뭉쳐 미국 무역적자 해소를 지원하자는 '제2의 플라자 합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주요국 340여개 기관투자가 모임인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최근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로 인한 불균형이 세계 경제의 건전성을 해친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20년 전처럼 주요 선진국 간 국제적 공조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찰스 달라라 IIF 소장은 특히 "G7에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4개국을 추가한 G11이 구성돼야 한다"고 말해 중국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IIF의 문제 제기는 '제2플라자 합의' 논의에 불을 댕길 것이란 관측이 강하다.
◆플라자 합의 때와 유사한 경제환경
플라자 합의 당시인 80년대 중반과 지금의 국제경제 환경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미국의 쌍둥이 적자(경상적자와 재정적자) 누적이란 배경이 똑같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20년 전인 레이건 행정부와 지금의 부시 행정부에 한결같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셈이니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큰 차이점은 20년 전 최대 대미흑자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또 과거에는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세계적인 저금리시대가 열려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자산버블을 유발했지만,지금은 저금리가 이미 보편화돼 오히려 자산버블이 꺼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