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가 로드맵 '輕步兵型'으로

홍준형 우리는 언제나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되뇌지만,외국에선 한국을 2차 대전 이후 탄생한 신생국가로 보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젊은 나라다. 1948년 정부수립에서 고작 50여년,사람으로 치면 장년이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청년도 될까말까하다. 젊음의 본질은 단연 역동성이다. 역동성에 관한 한 우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월드컵축구,IT혁명,유권자 행태에 이르기까지 역동성의 코드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성급함과 경박성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겠지만 역동성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젊음의 자산이다. 역동성이 있었기에 압축 성장이 가능했고 첨단기술에 도전할 수 있었다. 때론 실패를 겪으면서도 그렇게 배양된 역량과 자산으로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까. 몇 년 전부터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를 모델로 한 '강소국'론이 일부 언론과 학계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청와대 일각에선 일부 언론에서 말했던 핀란드 같은 강소국 모형은 인구 규모 등에서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독일 같은 '강중국' 모델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웬 구름 잡는 얘기냐고 하겠지만 국가발전의 큰 밑그림을 그리는 일은 중요하다. 사실 강소국의 모델은 매력적이다. 인구 550만명에 불과하지만 노키아 등 세계적 기업들을 보유하고 세계 최상위권의 GDP와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핀란드,비슷한 인구에 글로벌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중심의 튼실한 경제로 세계 2위권의 국민소득과 최상위의 행복지수,정보화와 전자정부 등에서 첨단을 달리는 덴마크를 생각하면 부러움이 앞선다. '강중국' 역시 될 수만 있다면 가슴 벅찬 비전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강소국이든 강중국이든,안정기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든 서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할 여력이 없다는 데 있다. 경제도 키우고 민주주의도 발전시키며 복지도 통일도 하자고 하지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달성하는 것은 현재 여건과 역량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일의 경중,우선순위와 타이밍을 차별화한 로드맵 같은 게 필요한데,정작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것은 중장비 기갑부대보다는 경보병형 국가를 향한 로드맵이라고 말하고 싶다. 통일 이후 독일정치의 가장 큰 줄기는 너무 빨리 넓게 고착화해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복지의 부담을 어떻게 정치적 가능성의 범위 안에서 해소해가느냐에 모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등과 복지의 이념을 실질적으로 양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지만 슈뢰더는 결국 선거에 졌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스의 참상은 방재시스템 고장 등 '제3세계 미국'의 수치뿐 아니라 가능하면 일찍, 많이 자녀를 낳아 정부보조로 살아가던 비만한 '30대 할머니'들을 통해 '병든 복지국가 미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였다. 자칫 제 발로 복지라는 이름의 늪에 걸어 들어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정권 시절 성장과 복지의 딜레마에 대한 나름의 해법으로 내건 생산적 복지도 그리 생산적이지는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지원 중심의 부조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복지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다. 경보병 모델은 외부환경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과 자산을 극대화해 비교우위 부문에 집중투입하고 스스로를 변모시켜 나가는 전략이다. 한 부문의 발전성과가 다른 부문에까지 흘러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교우위 부문에 대한 선별적 집중이 필요하다. 반면 노쇠한 서구형 복지국가에서 논의되는 정책대안들을 맹목적으로 동기화하여 우리에게 적용하는 오류는 금물이다. 대표적 분야가 교육과 노동이다. 우리는 더 발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발목이 자유로운 경보병형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이미 올라타 버린 호랑이 등에서 살아남을 궁리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