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6자회담 타결이끈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

전 국민이 추석연휴 마지막날의 느긋함을 즐기던 지난 19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낭보가 날아 들었다. 북핵 6자회담 타결. 전 세계 언론들도 '북한 완전한 핵포기 결정. 미국도 대북 불가침 약속'이란 긴급뉴스를 지구촌 곳곳으로 일제히 타전했다. 2단계 회의 7일째,1단계 회의를 포함해 19일간 마라톤 협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중국 황제의 낚시터였던 회담장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그야말로 '월척'을 낚은 것이다. 한국 협상팀의 대표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서울 광화문 외교통상부 청사 15층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근세 100년 동안 우리의 입장이 반영된 역사는 없었다"고 전제,"우리에게 주어진 역사를 우리를 위한 역사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을 연 회담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핵문제 해결이란 대전제 못지않게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된 회담이란 사실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송 차관보를 처음 만난 사람은 딱 벌어진 어깨와 운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체구,낮고 굵은 톤의 목소리에서 선이 굵은 협상가임을 단번에 느끼게 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꺼내는 스타일이다. 회담 직전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좌고우면 하지 말자.복잡한 논리를 꺼내지 말자"고 못을 박은 후 협상을 시작했다. 그는 협상에 관한 3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정직성과 사실성,그리고 논리다. "납득할 수 없는 문서에는 지금까지 서명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1990년 안보과장으로 미국과 1차 소파(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협상을 할 때였다. 주한미군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놓고 미국과 옥신각신할 때 "미국이 우리의 사법주권 자체를 존중할 생각이 없다면 시간만 끄는 협상은 계속할 의미가 없다"며 회담장을 여러 차례 박차고 나왔다. 그 결과 불평등의 상징이었던 형사재판권 자동포기 조항 삭제를 관철했지만 반미주의자라는 뒷소리를 감수해야 했다. 2000년 9월 북미국장 시절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 때는 미국측 상대가 고위 정치선을 통한 문제해결을 시사하자,"설사 백악관이 우리 고위선을 설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협상팀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라며 회담 무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커널(colonel·대령)송'이라고 불린다. 이번 회담에서 그를 수행했던 조태용 북핵기획단장도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야전의 냄새가 묻어나는 지휘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말했다.덕장(德將)이라기보다는 용장(勇將)이라고도 했다. 그는 협상장에서 "그게 당신의 의견(observation)이냐,입장(position)이냐"며 다그친다.협상의 전제와 출발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그는 "본질을 명쾌하게 정리해야 실타래처럼 얽인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영어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과정일 수만은 없는 일.이럴 때 특유의 암시와 비유로 교착국면을 헤쳐간다. 이번 협상에서도 '송민순식 메타포어(metaphor)'는 각 회담 대표들의 호평을 받았다. 실례로 북한의 경수로 요구로 회담이 난항에 빠졌을 때 언론을 통해 "북한에 경수로를 가질 기회의 창을 열어두자"고 타협안적 승부수를 던졌다. 물론 그는 이 얘기를 협상장에서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론을 통해 상대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이런 식의 화법은 회담을 끝내려는 상대를 돌려앉히며 협상을 끌고가는 모멘텀 역할을 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비유법에 대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축적된 인문학적 감성과 풍부한 협상경험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지난달 열렸던 4차 6자회담 1단계 회의 마지막 날 그가 꺼냈던 '창조적 모호성'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나중에 풀자는 암묵적 제의였다"고 설명했다. 우회로가 있는데 맨 몸으로 강물에 뛰어드는 것은 길을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번 6자 회담을 통해 한국 외교관으로는 전례 없는 세계적 지명도까지 얻은 그의 협상론은 뭘까. "근거없는 낙관에 기초하면 비관론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됩니다. 저는 항상 현실적인 낙관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모든 협상의 당사자들은 추구하는 우선 순위에 반드시 차이가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차이를 정교하게 알아내 조화시키는 것이 협상 기술이라고 봅니다." 송 차관보는 이번 협상결과에 만족할까. 그는 "역사학자 노먼 데이비스는 저서 '유럽의 역사'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지나지 않은 것은 평가를 하지 마라'는 말을 했다"며 말을 아꼈다. "6자 회담은 한반도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입장을 갖고 북한,미국과 조정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협상에서도 이러한 마음가짐은 변함 없을 것입니다."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5차 6자회담에서도 그의 자주적 외교스타일이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심기.양윤모 기자 sglee@hankyung.com ▶서울대 독문학과 ▶1975년 외무부 입부(외시 9기) ▶1989년 안보과장 ▶1991년 북미과장 ▶1997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비서관 ▶1999년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2001년 주 폴란드 대사 ▶2003년 경기도국제관계자문대사 ▶2004년 외교통상부 기획관리실장 ▶2005년 외교통상부 차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