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얼치기 좌파들의 금산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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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의 금산법 24조는 차제에 폐기하는 것이 옳다.
소급 여부를 둘러싼 법리 논쟁도 접는 것이 좋겠다.
금산법을 통해 산업의 금융 지배를 차단한다는 따위의,사실 관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관념론도 이제는 그만 두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산금분리 원칙과 금산법이 정하는 소위 재벌 금융사의 주식소유 제한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문제가 되는 금산법 24조의 주식 보유제한은 처음부터 주소지를 잘못 찾아 들어간 법이고 반기업주의와 반재벌 정서를 어설피 법조문화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공정거래법과 겹치는 2중,3중의 중복규제다.
지난 97년 3월, 당시 논란이 됐던 종금사 문제를 처리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얼렁뚱땅 쑤셔넣은 조문이다 보니 금융감독 당국조차 2002년까지 무려 5년 동안이나 이런 조문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실로 우스꽝스런 법이다.
금산법은 원래는 '금융기관의 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이었다.
한마디로 구조조정법이다.
당시 한승수 재경원 장관의 금산법 전면 개정 제안 설명에조차 "이 법은 합병절차를 간소화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주의 경고 등 시정조치를 마련한다"는 것이 골자로 돼 있던 그런 법이다.
여기에 누군가의 은밀한 책동에 의해 '24조 소유제한'이 슬쩍 끼어 들어갔던 것이 오늘의 논란이 생긴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법률로서의 기본 구색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말았다. 문제의 24조만 하더라도 원래의 취지는 "승인을 받아 취득하라"는 것이었지만 기이하게도 시행령에 가서 "사실상의 취득 금지"로 교묘하게 바뀌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처벌을 논하는 자체가 한낱 공허한 말장난이다. 국회가 법에서'승인 가능'으로 해놓은 것을 시행령에서 사실상의 '승인 불가'로 조작한 것부터가 정부의 월권이요 장난질이다.
도대체 금산법 24조가 요구하는 금산분리와 소유제한은 어디서 유래한 법률인가.
참으로 우습게도 이 조항은 미국의 은행법과 은행지주회사법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25% 이상 단독소유를 금지하고 5% 이상 실질지배를 금지한 미국의 관련 법조항은 그러나 '은행'에 강제된 법이지 '결코' 보험회사나 카드사 따위가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미국에서는 보험사나 카드사에 대해 소유를 제한하는 법이 없냐고? 답은 "당연히 없다"이다.
미국 아니라 어느 나라에도 그런 법은 없다. 은행과 제 2금융은 비슷하게 '금융'이란 이름을 붙여놓고는 있지만 그 본질부터가 전혀 다른 것이다.
이점을 애써 간과하고 금산분리를 외쳐대니 이 소동이 생긴 것이다.
은행업은 한마디로 국가 면허 사업이다.
아무나 '장사로서' 하는 그런 사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대출을 받고 예금을 통해 신용을 창출하는 하나의 사회적 기관(institution)이기 때문에 예금자를 보호해주고 공동의 전산망을 운영하고 소유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설픈 금산 규제가 한국의 은행업을 오늘날 어떤 상태로 만들어 놓았는가이다.
국내 토종 자본을 육성하는 데 실패한 결과 은행들은 놀랍게도 국영이거나 아니면 외국자본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금융산업은 멕시코보다 더 심한 최악의 종속적 금융구조를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제 2금융권까지 엄격하게 소유를 제한하자는 것이 금산법 24조다.
또 이것이 대기업의 금융 소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획책하는 구도다.
오직 재벌을 죽여주기만 한다면 외국자본이라도 좋고 악마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더구나 금산법을 핑계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끊어놓으려 하니 그들을 얼치기 좌파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누구를 그렇게 부를 것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