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치적 발언과 법원 판결

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국감장.서너시간 뒤면 나올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사건(삼성에버랜드가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에게 CB를 저가에 발행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허태학 전 사장 등이 기소된 사건)에 대한 법원의 선고를 의식이라도 한듯 일부 의원들은 삼성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삼성에버랜드 재판은 사법부가 이건희 삼성회장 일가로부터 독립돼 있는지,종속돼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삼성 저격수'로 자리매김한 그는 "깃털에 불과한 허태학 삼성에버랜드 전 사장에 대해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에버랜드 CB사건'을 맡고 있는 법원은 다름 아닌 서울중앙지법.노 의원 본인의 의사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성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피감기관을 옥죄는 발언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천정배 법무장관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천 장관은 "(삼성에버랜드 사건이) 무죄인 경우에도 법리상 무죄인지 사실상 무죄인지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리상 무죄라면 (검찰이) 항소해야 할 것"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재판 결과는 그들의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법원 스스로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데다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 뒤라 이날 판결이 정치권의 발언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사법부의 그런 노력을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도 노 의원과 천 장관의 발언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줄까. 더군다나 이 대법원장 취임과정에서 '코드인사' 논란이 있었던 터다. 노 의원과 천 장관의 발언은 자신들의 이름을 언론에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기업에 대한 국민 감정을 악화시키고 사법부의 공정성마저 훼손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