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5) 이공계, 길게보면 블루오션
입력
수정
"한국 사회는 변화가 빠른 만큼이나 직업에 대한 선호도에서 굴곡이 뚜렷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이 분야로 진출하려고 생각하는 우수한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셈입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그 길을 간다면 사회로 진출할 때쯤인 5∼10년 후에는 가장 뛰어난 인재로 각광받게 될 테니까요."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나와 IT(정보기술)기업 휴맥스를 창업해 벤처신화를 일궈낸 변대규 사장(45)은 당장은 이공계 대학이 인기 측면에서 의대나 한의대 등에 밀려 기피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과감한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을 갖춘 이공계 출신들이 벤처기업 창업 등을 통해 21세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게 변 사장의 전망이다. 변 사장의 이런 예상은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노먼 파인골드와 노마 밀러 박사의 예측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세계미래학회가 발간하는 '퓨처리스트' 최신호 기고를 통해 "10년 후부터 급부상할 유망 직업 27개 중 60%가량인 16개가 이공계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기술자와 기술융합 엔지니어,소프트웨어 클럽운영자 등이 대표적이다.
밀러 박사는 "현재의 유망직업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무량이 많아지지만 보상은 줄어들고 있다"며 "앞으로는 5∼6개 직업을 가진 멀티플레이어 시대가 도래하고 이 때에는 이공계 출신들이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지금은 이공계 전체적으로 볼 때 인력의 공급초과 현상이 있긴 하지만 2010년쯤에는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분야가 상당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수학과 물리학,전기전자,화학공학 그리고 식품유전 등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인력부족 현상이 생길 것으로 과학기술부는 전망하고 있다.
과기부는 이때쯤 석·박사급 고급 인력의 경우 10대 성장동력인 차세대 이동통신분야에서 179명이,디지털 콘텐츠분야에서 230명이 모자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고급 인력 부족 사태는 결국 이공계 출신들의 '몸값'을 올리게 만들 것이라고 임상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분석했다.
이와 함께 이공계 출신이 진출하는 영역도 최근 들어 다양화되는 추세다. 지금까지 주로 문과 출신들이 가던 증권 금융 법률 컨설팅 등 분야에 이공계 출신들의 진출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이는 문과계 출신들은 이공계 분야로의 진출에 '테크놀로지'라는 커다란 장벽이 놓여 있는 것과는 정면으로 대비된다.
수치에 밝은 이공학적 특성이 발휘될 수 있는 증권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온 김성인 한누리증권 수석 애널리스트는 "IT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을 이공계를 나온 애널리스트들이 수준 높은 기술지식을 바탕으로 관찰.분석해 낼 수밖에 없다"며 "이공계 출신 인력의 수요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법률계로 진출한 오창훈 변호사(법무법인 길상)는 "이제 교통사고는 단순한 인과관계에 의해서만 분석되는 게 아니라 차의 제동거리,공주거리 등 물리와 동력학으로 분석해야 사고책임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다"며 "이는 이공계 출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창화 박사(한국산업기술평가원 신성장 사업본부장)는 "우리사회가 시장 원리에 따른 실용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실용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이공계 출신들이 갈수록 환영받고 있다"고 밝혔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