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속으로] 하이닉스 살린 '반도체 문회한' 우의제 사장


지난 7월12일,하이닉스반도체는 3년 9개월 만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당초 내년 말로 예정됐던 워크아웃 기간을 무려 1년6개월이나 앞당겨 졸업한 것.잔치라도 열어야 될 이날,이 회사 우의제 사장(61)은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했다.
"들뜨지 말고 자만하지 말자"는 당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직원들에게도 "회사든 사람이든 정상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며 자기 만족은 실패를 낳고 지금의 껍질을 벗지 못하게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반성과 도전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비록 회사는 정상궤도에 들어섰지만 과거 존폐 위기까지 몰렸던 어려움을 잊지 말자는 게 그의 메시지였다.
지금은 하이닉스를 워크아웃에서 졸업시킨 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우의제 사장은 2002년까지 반도체에는 문외한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1967년 외환은행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2000년까지 33년간 외환은행에서만 근무한 정통 은행원 출신이다.


그런 우 사장이 하이닉스 사장을 맡은 것은 2002년 7월.10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던 하이닉스에 대해 채권단이 워크아웃 결정을 내린 직후였다.
안팎에서 "하이닉스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가 들려오던 터라 어느 누구도 사장직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시기였다.


우 사장도 "처음엔 자신이 없어 망설였다"고 할 정도다.


막상 부실기업 회생을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안팎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에게 '채권단에서 파견된 점령군' '반도체는 전혀 모르는 뱅커(은행원) 출신 사장'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하지만 우 사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 있는 경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취임 이후 경기도 이천과 청주공장을 매일 오가며 직원들을 만났다.


회식자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직원들과 소주 잔을 기울였다.


적극적인 설득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의 협력도 이끌어냈다.


2000년 2만2000여명이던 직원은 2003년 말 1만여명으로 줄이고 현대큐리텔 비메모리사업부문 등 13개 계열사를 매각하는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한 것.


회사 정상화를 위한 전략도 세웠다.


대표적인 게 '블루칩 프로젝트'.투자자금이 부족한 회사 상황을 감안해 신규투자보다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자는 프로젝트였다.


2003년 3분기 첫 흑자전환을 이룬 다음부터는 직원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하며 채찍질을 가했다.


"한 고비를 넘었다고 안주하면 다음부터는 내리막길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이닉스가 정상화에 들어선 지금 우 사장은 "아직도 위기"라고 말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도태되는 게 반도체 산업의 특성이며,하이닉스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가 안정 단계에 접어든 지금도 이천과 청주공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