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우선 정치적 성장과정부터 그렇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차례나 낙선했고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도전장을 던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과정을 연출하며 결국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고이즈미 총리도 첫 출마한 69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고 총리직도 삼수(三修) 끝에 차지했다. 고집스런 성격과 강인한 승부근성도 빼닮았다. 스스로 옳다는 신념이 있으면 주위 시선이나 현실여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3당 합당을 거부했고 5공 청문회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날리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개혁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것도 이런 올곧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일본 정치계에서 '헨진(變人ㆍ괴짜)' '독불장군' 등으로 불리는 고이즈미 역시 한국 중국 등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정도로 고집이 대단하다. 그는 총리직에 처음 도전할 때부터 우정사업 민영화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당시로선 일본국민들도 큰 관심이 없는 사안이었지만 줄기차게 이를 거론하며 '고이즈미=우정사업 민영화=개혁'이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기반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두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극히 대조적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회에서 개헌선을 확보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20%대에 불과하다.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똑같이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두 사람의 평가가 이처럼 엇갈리는 것은 왜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개혁의 주력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 대통령은 정치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고이즈미 총리는 경제의 틀을 바로세우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과거사 정리,행정수도 이전,연정(聯政) 등을 거론하며 끊임없이 정치적 논란거리를 생산해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일반국민들로선 별로 시급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문제들이었던데다 이는 결국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키우는 결과로 연결됐다. 국민정서 등 정치논리까지 가미된 기업두들기기가 이어지면서 재계는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의 눈치를 살피며 바짝 엎드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공기업 민영화 계획은 후퇴했고 공무원은 2만3000여명이나 늘어났다. 반면 고이즈미 개혁은 경제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의 숙원사업인 우정공사 민영화는 관(官)보다는 민(民) 중심의,시장경제원리가 보다 원활히 작동하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공무원 정원을 10% 줄이기로 한 것도 민간경제 부문으로의 인재 공급을 늘리고 세금 지출은 가능한한 줄이겠다는 뜻이다. 내년까지 약 1100개 항목의 규제를 풀기로 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의지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민심을 장악한 고이즈미 총리의 행보는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어떻게 하는 것이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