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공부문 혁신구호 진심인가

김 경 준 혁신의 구호소리가 요란하다. 민간기업에서 경영혁신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요즘은 공공부문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앞으로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혁자생존(革者生存)의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혁신의 출발점은 시장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경쟁자 없이 시장의 압력에 노출되지 않은 혁신이란 실체 없는 캠페인으로 전락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생물에게는 진화라고 하고,조직에는 혁신이라고 한다. 진화란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가장 적응을 잘하는 개체가 살아남는 장기 레이스이고,이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환경변화와 경쟁의 압력 없이는 진화도 혁신도 없다는 점이다. 현상유지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것이기에 행복한 균형을 깨뜨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변화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사활을 건 생존게임이 시작되고,진화와 혁신은 여기서 출발한다. 혁신을 달리 표현하면 같은 일을 낮은 비용으로 하거나,같은 비용으로 더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는 크다. 우리 기업들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혁신의 절박성은 1997년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상식이 됐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물은 실적으로 나타난다. 반도체 신화를 일군 삼성전자는 1994년 매출액 11조원,순익 1조원,종업원 5만1000명에서 2004년 매출액은 57조원,순익 10조원,종업원 6만2000명으로 성장했다. 인원은 20% 늘었지만 매출액은 5배가 된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1994년 매출액 9조원,종업원 4만4000명에서 2004년 매출액 27조원,종업원 5만3000명으로 커졌다. 인원 20% 증가로 매출액은 3배가 된 것이다. 이렇듯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혁신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시장의 압력이다. 개방화로 국내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고,해외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1997년 이후 살아남은 오늘날의 우리 기업은 모두 이런 혁신과정을 거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공공부문의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1994년 90여만명이던 공무원은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고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다. 공기업도 비효율성이 그대로인 가운데 청년실업 해소 등의 이런저런 명분으로 인원과 자회사는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필수적이었던 여러 가지 서비스가 이제는 정보기술 발달로 공공독점의 필요성도 줄어들었고,서비스 제공을 위해 필요한 인원이 감소했음에도 실질적 변화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민간서비스와 경합관계로 들어가고 있는 공공서비스가 늘고 있다. 우체국은 택배회사와 경합중이고,경찰의 치안 서비스는 보안회사가 일부 제공중이다. 교육은 국내 사교육이 아니라 해외 공교육에도 시장을 뺏기고 있는 지경이다. 초등학교 취학아동이 연간 10만명 감소한다는 건 매년 담임교사만 3000명이 필요없게 된다는 것인데,일부 교육단체가 오히려 교사 수를 늘리라고 목청을 높이는 걸 보면 아연할 뿐이다. 특히 최근의 경기침체에다 장기적으로 노령화와 인구감소가 예상됨에도 공공부문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민간부문 납세자의 허리만 휘게 만들 뿐이다. 공공부문이 진정으로 혁신을 원한다면 가능한 부분에 시장을 작동하게 하고 경쟁원리를 도입하면 저절로 된다고 본다. 불필요한 공공부문에 독점적 지위를 유지시키면서 혁신을 아무리 외쳐봐야 결국 실체없는 정신운동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경쟁에 가장 노출된 곳이 혁신이 출발하는 곳이고, 이 경험을 배워나가는 것이 올바른 혁신의 순환구조다. 우리사회에서 혁신경험은 이미 기업이 가지고 있다. 혁신을 하려면 민간의 생존방식을 귀감으로 삼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