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열정아닌 위안이다.. 천운영씨 '잘가라, 서커스'

단편집 '바늘'과 '명랑'으로 개성있는 문체를 선보였던 신예작가 천운영(34)씨가 첫 장편소설 '잘 가라,서커스'(문학동네)를 펴냈다. 독특한 제목의 '잘 가라,서커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 '사랑'은 아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설렘이나 열정이 아닌,위안으로서의 사랑'이야기다. 작가는 "사랑은 위안이고 치유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사랑했다.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한국으로 시집 온 25살 조선족 여인 '해화'와 시동생인 '윤호'가 번갈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윤호는 당뇨병으로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한 어머니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서커스를 보여주려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형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연길로 형과 함께 맞선여행을 떠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곳에서 작고 가녀리지만 단단한 여자 '림해화'를 만난다. 해화의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린 형과 해화는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다.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생활에 적응해 가던 새 형수를 바라보는 윤호의 마음에 언제부턴가 해화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해화는 어릴 적 고향마을의 발해유물인 정효공주 무덤에서 만났던 한 남자를 잊지 못한다. 해화의 한국행에는 속초 어딘가에 있다는 남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편 형은 평소엔 한없이 자상하다가도 이성을 잃으면 전깃줄로 묶어 해화를 학대한다. 서서히 말을 잃어가던 해화는 어느날 집을 나와 자본주의 세상을 배회한다. 작가는 2년 전 어느 식당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의 사연을 듣고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가나 체제이념 등과 관련된 거대담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그들과 우리의 삶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집필을 위해 뱃길로 꼬박 13~14시간이 걸리는 중국을 세 차례나 다녀왔다. 중국에 갈 때마다 한두 달씩 머물며 조선족 동포들의 풍습과 사투리를 익혔고 속초와 훈춘을 오가는 배 안에서는 따이공(보따리장수)들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