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블루오션에 번지는 자학증

블루오션전략을 전파하는 일을 하면서 최근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토론도 자주 하고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러면서 놀라는 일이 많다. '블루오션전략'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참 적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에 자세히 설명돼 있는 내용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는 걸 보면 그렇다. "레드오션은 버리라는 말이냐?"는 식의 질문을 들으면 답답할 뿐이다. 바빠서 책을 대충 읽은 이들은 그렇다고 쳐도 소위 전문가들이 내놓는 자학(自虐)적인 비난들에는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레드오션을 거쳐야 블루오션에 갈 수 있다"는 그럴 듯해 보이는 지적은 블루오션을 레드오션 다음 단계쯤으로 여기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외국 학자의 입을 빌려 '블루오션은 말장난'이라고 단정짓는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파력이 훨씬 빠름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노릇이다. 블루오션전략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제까지 없었던 새 업종이나 서비스를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둬보자는 주장이다. 헨리 포드가 개척한 자동차산업, 샘 월튼이 월마트로 처음 만든 대형할인소매라는 업태, 마이클 델이 성공시킨 직접판매모델 등과 같은 초대형 성공을 우리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블루오션전략 이전까지는 이런 새 산업, 새 서비스는 천재들이나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들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작은 기업이나 개인이 할 일은 이미 만들어진 업종이나 서비스 안에서 남아있는 '떡고물'을 더 차지하기위한 경쟁밖에 없었다. 이제 그런 한계를 떨쳐내는 전략론이 나와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제대로 읽지도,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의미없는 것으로,또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고 포기하는 것은 자학적 정서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굳이 권위에 의존할 이유도 없지만 이 전략을 집대성한 동명의 책이 세계 29개 언어로 번역되며 100여개국 이상에서 출간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블루오션전략을 지난 98년부터 적용해 2001∼2004년 동안 이 방법론으로 5조원을 절감했다는 삼성전자 VIP센터의 발표는 무엇인가. 싱가포르가 지난 2년간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올 12월에 내놓을 새 국가전략이 바로 블루오션전략을 뼈대로 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상황이 이런데 창시자의 나라인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고담준론만 흘러나오니 어떻게 된 현실인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매달려온 화두는 바로 '10년 뒤,20년 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다. 그 정답이 무엇인지 몰라도 지금 있는 산업에서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찾아낼 레드오션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초부터 블루오션 전략을 소개,전파한 이후 수많은 이들이 블루오션이 준 지적 충격에 흥분하며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우리가 세상을 뒤흔들 새 산업, 새 서비스를 개척하자는 주장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샘 월튼은 잡화점 주인이었고 마이클 델은 대학생이었다.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일은 쉽지 않아서 그렇지 '해서는 안되는 일'이 전혀 아니다. 우리의 잠재력을 죽이는 자학증이 더 이상 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