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뗏목' 못버린 코드정치가 문제

박효종 10ㆍ26 재선거는 여야의 승패를 갈랐다. 여기서 한나라당의 전승보다 열린우리당의 참패가 도드라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물론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고 또 '선거지상사'일 터이다. 따라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번 참패에서 정부ㆍ여당은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처럼 무엇인가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의 국정운영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내재돼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패배를 선택하는 정당은 없다. 그러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그 태도에 따라 패배는 독약도 되고 보약도 된다. 이 시점에서 정부ㆍ여당에 고언을 한다면,불난 집에 부채질하거나 상처에 소금을 바르려는 의도가 아니라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미 많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흉중에 품었던 쓴말을 쏟아내고 있다. 때는 늦었지만,소중한 말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야당이나 언론에서 나왔다면 '선출된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해묵은 작태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한 식구 같은 여당 내부에서 나온 만큼 진정성이 있다. 청와대는 '레임덕 현상'의 시작이라고 경계태세를 취하기보다 입에는 쓰나 몸에는 좋은 양약(良藥)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부ㆍ여당은 정권을 잡았을 때의 초심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대권을 잡았을 때 그 감회와 포부는 어떠했는가.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선진화를 위한 정치로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았는가. 배의 새로운 선장으로 지휘봉을 잡았을 때 '희망의 나라'로 항해해 가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결과는 이른바 '뗏목정치'였다. 뗏목으로 강을 건너 바다에 도달해 큰 배의 선장이 됐으면 그 뗏목은 버렸어야 하는데,그 뗏목을 계속해서 등에 지고 운항을 했다. 그것이 바로 '코드정치'의 문제다. 왜 이 정부의 정치가 프로정치가 아닌 아마추어정치가 됐는지,또 진보성향의 인사들로 일색을 이루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또 참여정부는 배의 지휘봉을 잡았으면서도 그 배에 흠결이 있다고 계속해서 질타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의 역사는 "특권과 반칙의 역사"며 "역사의 고비마다 분열세력이 승리했기 때문에" 주류를 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류가 교체돼야 한다는 그 배는 정지해 있는 배가 아니라 항해하고 있는 배다. 항해 중인 배에 고장이 났다고 해서 그 배를 뒤집어 놓고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배의 엔진을 갈면 문제는 고쳐질는지 모르나,배는 가라앉는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 배를 운항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오만함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시대정신'에 주목하는 것은 좋으나,그렇다고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혁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타당하나, '통합정신'의 중요성을 잊은 것은 실책이다. 참여정부는 이번 재선거 패배에서 운이 나빴다고 변명해서는 안된다. 또 국민들이 참여정부의 진정성을 몰라준다거나 국민들이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았다고 그 책임을 전가해서도 곤란하다. 참여정부 스스로 시대정신과 헌법정신에 맞게 변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심기일전을 다짐해야 한다. 국민들은 '선출된 권력'이든 '강압적 권력'이든 '오만한 권력'을 싫어한다. 국민들은 삶의 현장에서 힘겨워하고 있는데 "외교실적이 초과 달성되고 있다"고 우쭐하거나 "경제도 좋아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한다면,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심봉사의 권력'일 뿐, 국민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洗足)의 권력'은 아니다. 이제 참여정부는 타의이긴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국민에게 또다시 변화를 요구할 것인가,아니면 스스로 변하기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진심으로 참여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