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대충 만들어 먹는 시대 끝나

권훈정 만두사건 김치사건 등 소위 식품 '사건'을 보면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관리기관,생산자 또는 수입업자,소비자 등 여러 곳에서 문제를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식품을 너무 익숙하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데 있지는 않을까? 시대가 변화해 식품이 대량 생산되고 품질에 대한 기준은 높아졌지만 우리는 아직 "옛날부터 먹어오던 거니까" "누구나 먹는 거니까" "먹는 건 다 그게 그거지" 하는 생각을 은연 중 갖고 있다. 휴대폰을 살 때는 내게 필요한 기능이나 회사의 기술력을 따지고 꼼꼼히 조사해서 구매하지만 오늘 점심 먹을 식당을 찾을 때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가격이 적당한 곳에서 한 끼 때우고 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세 끼 식사는 대강 적당히 하고 부족한 부분을 비싼 건강기능식품으로 메우려 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쉽게 생각하는데 생산자들이 구태여 정성 들일 필요가 있을까? 전자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술자도 필요하고 배울 것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김치를 만들어 파는 것은 오늘 당장이라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휴대폰을 만들 때는 첨단 기능과 디자인을 생각하고 소비자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사전조사를 벌이지만 김치를 만들어 팔 때는 대강 버무려 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 실정이다. 가정에서 소규모로 음식을 만드는 것과 대규모로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은 다르다. 판매용 식품을 만들 때는 정성도 들여야 하겠지만 재료 구입부터 생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이 전문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이것이 반대로 되면,즉 정성은 가정에서 음식 준비할 때처럼 들이지 못하고 관리과정은 아마추어가 될 때 식품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높아진다. 이번 김치 사건은 특정국의 수입식품 문제가 아니다. 수입할 때,현지에 가서 어떤 원료를 사용하고 어떤 공장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식품을 생산하는지 꼼꼼히 확인한다면 수입식품의 질은 올라간다. 식품을 수입하고 판매하고 제조하는 업자들이 내가 안심하고 먹고,내 자식과 부모님에게 자랑스럽게 드릴 수 있는 식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고 생각한다면 소비자의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이들이 최선을 다하고도 해결되지 못한 요소는 관리기관과 과학자의 몫이다. 보이지 않는 위해요소를 찾아 기준을 정하고,그 기준에 적합한 생산과정을 확보하며,최종제품이 그 기준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 부분은 생산지와 가까운 곳에서 지도하면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식품은 국내에서,수입식품은 현지에서 지도하고 검사할 수 있다. 수입업자가 수시로 점검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현지에 품질관리 평가 기관을 세울 수도 있다. 우리는 이 평가기관의 전문성과 신뢰성만 주기적으로 검증하고,실제 식품은 수출 전 현지 평가기관의 검사를 받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평가 후 인증 받은 식품과 그렇지 못한 식품은 소비자가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후는 소비자의 몫이다.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식품의 질과 이에 대한 금전적 가치는 정해질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전제 조건은 선택하는 식품에 대한 정보가 확보돼야 한다. 내가 구매하려는 식품에 무엇이 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내게 전달되고 있는지 소비자가 원할 때 찾을 수 있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자료가 제공돼야 한다. 소비자도 물론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제공되는 자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현대사회의 기준에 미달되는 제품은 과감히 퇴출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의 중등 교육과정은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에 충분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다만 입시에 묻혀 외면당하고 있을 뿐이다. 안전한 식탁을 남이 가져다주길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찾아 나서는 소비자들이 있는 한 우리 식생활은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