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강 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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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허리를 가로 질러 흐르는 한강은 그 유장한 물길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온갖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유역이 쟁취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면,고려시대에는 이 곳으로 천도해 놓고서도 불길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곧 개성으로 되돌아 갔다.
한강이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한양이 도읍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였다.
무엇보다 한강은 운송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았다.
전국의 세곡(稅穀)은 물론 소작농들이 한양의 지주들에게 바치는 곡물이 한강을 통해 운반됐다.
도성안의 사람들이 쓰는 일반 생필품도 많은 양이 한강을 통해 공급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목선만이 오가던 한강에 증기선이 등장한 것은 1888년이었다.
중국인 거상 동순태가 1백t짜리 증기선을 들여와 용산과 인천사이를 취항시킨 것도 이 무렵이었다.
주요한 교통로였던 한강 뱃길은 한국전쟁으로 끊겼다.
1953년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한강에 민간선박을 운행할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 뱃길이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다시 열렸다는 소식이다.
서울시가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 복원해 놓은 거북선을 이순신 장군이 큰 승리를 거두었던 한산도로 옮기기 위해 운행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강수로 이용에 관한 활발한 논의도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시인들은 한강을 노래한다.
"우리 겨레 어이하여 갈렸는가/맺힌 한아 이제는 흘러가라"고 절규하는가 하면,때로는 "한강이 다시 살아 꽃 피어 날 때/우리도 이 시대의 한강을 다시 살아 흐르게 하라"고 희망을 던지지도 한다.
그렇지만 한강은 뭐니뭐니 해도 낭만의 장소다.
"한강수야 깊고 맑은 물에/수상선 타고서 에루화 뱃놀이 가잔다"하는 한강수타령이 그렇고,한용운님의 "술 싣고 계집 싣고/돛 가득히 바람 싣고/물 거슬러 노질하여…"하는 시귀가 가슴에 닿는다.
한국의 젖줄 한강이 어떤 사연을 가졌든 오늘도 잠들지 않고 흘렀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