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멧돼지

앞뒤 생각 없이 무조건 돌진하는 것을 가리켜 '저돌적(猪突的)'이라고 표현한다. 물불을 안가리는 사나운 성격을 묘사할 때도 '저돌적'이라는 단어를 곧잘 쓴다.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추진력이 강한 경우처럼 긍정적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에서 '저(猪)'는 멧돼지를 의미한다. 멧돼지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무기인데 공격을 당하거나 부상을 입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반격한다. 송곳니는 질긴 나무뿌리를 자를 정도로 위협적이다. 이솝우화 '멧돼지와 여우'에서는 멧돼지가 교훈적인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우는 틈만 나면 쉼없이 송곳니를 가는 이 동물을 조롱한다. 그러나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평소 열심히 무기(송곳니)를 관리했던 멧돼지는 살아남지만 여우는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개미와 베짱이'같은 얘기다. 말 그대로 멧돼지는 저돌적이어서 먹는 것과 사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농작물은 물론이고 토끼 들쥐 곤충,심지어 어류까지도 먹어 치우는 잡식성 동물이다. 활동성 역시 강해 섬까지 헤엄쳐 가 살기도 한다. 어지간히 큰 섬이면 그 곳에 멧돼지가 서식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번식력도 강해 한번에 7~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요즘 이 멧돼지들 때문에 전국이 야단이다. 대도시 주택가에 침입해 사람을 공격하는가 하면,고속도로에 뛰어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도심 한복판 창경궁에도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뿌린 적이 있다. 멧돼지들의 하산(下山)이 잇따르자 급기야 서울시는 '멧돼지 전문 포획단'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멧돼지로 인한 피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와이는 심각한 산림훼손을 보다못해 멧돼지 사냥을 허용했다고 한다. 호랑이 곰 늑대 같은 천적이 사라지면서 이제 멧돼지는 전국적으로 20여만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아니면 영역싸움에서 밀려난 멧돼지가 언제 어느 곳을 습격할지 몰라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