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을 가다] (14) 뉴욕 다이아몬드 시장..年 30조원 매출

'Welcome to The Diamond District.(다이아몬드 세계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 6번 애비뉴.남북으로 난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47번가 앞에서 이런 표지판을 만난다.
'Theater District(극장지구)'라는 말은 들어 봤지만 왠지 낯설다.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밝다.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실 정도다.


가게로 들어 갔다.


이건 다른 세상이다.
말 그대로 '별천지'다.


온통 다이아몬드 천지다.


반지에,시계에,귀고리에,팔찌에 걸터 앉은 다이아몬드는 세계 으뜸 보석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는 유명한 게 많다.


'세계의 돈줄'이라는 월스트리트를 비롯 패션 뮤지컬 공연 미술관 박물관 등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도시가 뉴욕이다.


그렇게 유명한 게 많아서일까.


뉴욕의 다이아몬드 시장은 이들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시장이 바로 뉴욕 맨해튼에 있는데도 말이다.


뉴욕의 다이아몬드 시장은 맨해튼 5번 애비뉴에서 6번 애비뉴 사이에 뻗어 있는 47번가를 말한다.


300m쯤 되는 거리 양쪽은 다이아몬드를 파는 점포로 가득차 있다.


건물 안에 오밀조밀 들어선 한두 평짜리 독립부스가 모두 독립사업장이다.


이런 사업장만 3000여개에 달한다.


그렇지만 이는 겉으로 볼 때 그렇다.


이웃인 45,46,48번가에 있는 건물들도 거의 대부분 다이아몬드와 관련돼 있다.


원석을 자르거나 가공 세공 세팅하는 등의 작업장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사업장까지 합치면 줄잡아 5000여개가 이 곳에 밀집돼 있다고 한다.


맨해튼에 다이아몬드 시장이 형성된 것은 1850년대쯤이다.


한두 개씩 모여들어 다이아몬드 거리를 형성하다가 지난 1931년 조직화됐다.


'다이아몬드 딜러 클럽(DDC)'과 '미국 다이아몬드 제조 및 수입 협회(DMIA)'가 설립되면서부터다.


2차 대전 발발 후 유럽의 딜러들과 '다이아몬드 가공의 선구자'인 유태인들이 줄줄이 이민 오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팔려 나가는 다이아몬드는 도소매를 합쳐 연간 300억달러가량.우리 돈으로 30조원을 넘는 규모이자 전세계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가히 세계 최대라 할 만하다.


'다이아몬드산업의 원조'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가 주로 원석 및 나석을 공급하는 최고의 다이아몬드 무역센터라면 뉴욕 다이아몬드 시장은 여기에 반지나 목걸이 등을 세팅까지 해서 판매하는 최대의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이다.


그렇다고 뉴욕의 다이아몬드시장이 원석을 가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곳의 특징은 다이아몬드에 관한한 모든 것을 다 취급한다는 점이다.


원석도 직접 들여와 가공한다.


다만 1캐럿을 넘는 대형 원석만 취급한다.


가공한 다이아몬드를 갈고 닦아 나석(반지틀 등을 입히지 않은 알맹이)만 팔기도 하고 세팅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이곳엔 다이아몬드 감정소(GIA)도 많다.


원석이 들어오면 수요자가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서 감정서까지 첨부해 공급하는 '원스톱 체제'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미국 전역은 물론 일본 홍콩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는 바로 다이아몬드 딜러 클럽이다.


이 업계에서 알아 주는 상인들의 모임으로 전세계 2000여명의 회원을 가진 '다이아몬드세계의 상원'쯤 되는 단체다.


친목단체이지만 이 안에서 다이아몬드 세계의 모든 질서가 정해진다고 보면 된다.


이 클럽 안에 있는 거래소에서 거래된 가격이 전세계 다이아몬드 가격의 기준이 된다.


명함에 '다이아몬드 딜러 클럽 멤버'라는 말이 써 있으면 무조건 신뢰를 얻을 정도로 권위도 자랑한다.


그런 만큼 아무나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원 6명이상의 보증서가 포함된 서류심사→20명이상의 회원들이 실시하는 까다로운 면접→신용 및 신원 확인작업→2년간의 임시회원자격부여' 등의 절차를 걸쳐야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현재 회원의 97%가 유태인이라는 점.구색용으로 이방인들이 몇명 끼어 있을 뿐이다.


이 중 한국인도 2~3명 된다.


한 마디로 이 클럽을 유태인이 지배하고,따라서 뉴욕 다이아몬드 시장도 유태인이 틀어쥐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살면서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을 통해 오로지 다이아몬드만 생각하는 전문가로 양성된다.


한여름에도 검은 모자에 턱수염을 기른 채 검정색 긴 코트를 걸친 정통 유태인들이 이 거리에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이"이스라엘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정이야 어떻든 이 곳의 다이아몬드는 믿을 만하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 싸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많은 만큼 모양도 빼어나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굳이 다이아몬드를 사지 않는다고 해도,뉴욕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말고 한번쯤 돌아봐야 할 이유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