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노동개혁 나섰다] (1) 독일병 치유 고강도 개혁 나섰다

기민.기사당(CDU/CSU)과 사민당(SPD)의 대연정 출범을 앞둔 독일에 매서운 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개혁의 화신'을 자처한 앙겔라 메르켈(기민당) 총리 내정자가 개혁에 박차를 가하면서 노동자의 마음이 움츠러들고 있다. '독일의 대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녀는 최근 "독일인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 침체된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해 앞으로 강도 높은 개혁정책이 시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대처가 영국병을 해결했듯이 메르켈은 총리에 당선되는 순간 '독일병'과 싸워야 하는 운명이 주어졌다. 기민당과 사민당은 지난 12일 부가가치세를 현행 16%에서 오는 2007년 1월부터 19%로 인상키로 하고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개혁으로는 독일병을 치유할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재계와 국민들은 메르켈의 고강도 개혁처방이 어느 수준이 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메르켈이 총리에 당선된 뒤 좌파 세력은 "독일에선 사회정의가 사라질 것"이라며 공격에 나서고 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군으로 생각했던 사민당이 지난 2003년 '아젠다 2010'이란 개혁정책을 펼쳐 가뜩이나 불만에 가득찬 노동계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표정들이다. 독일 사회에서 고복지 고비용의 주범으로 지목돼 온 노동계는 아무 우군도 없이 언론,정치권,재계로부터 경제를 망친 세력으로 집중타를 맞고 있다. 그야말로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노동계는 반발에 나서고 있지 않다.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노동조합,사용자,정부 등 노사정 3자가 대립과 투쟁보다는 자율교섭과 상호 공존을 중시하는 조합주의적 노사관계가 정착돼 왔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도 경제가 가라앉는데 대해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있다. 이 같은 특성으로 정부의 개혁을 가로 막기 위한 노조의 길거리 투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독일 노동전문가들은 확신하고 있다. 노동단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집권한 이후 매일 1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며 사민당의 친노(親勞)정책과 노동계의 분배노선을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비난여론 탓인지 노동계는 더이상 반발할 기력을 잃고 있다. 독일 연방노동청 공식통계에 따르면 현재 실업자는 460만명으로 실업률이 11%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실업자는 600만명이 넘는다"(도르스텐 슐텐 선임연구원)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실업문제는 심각하다. 독일 언론도 "대연정은 늘어나는 재정적자의 부담과 경기회복의 불투명성,세수의 불확실성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대연정의 지휘봉을 잡은 메르켈 총리. 그녀에게는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을 아우르고 노동단체를 껴안으며 경제를 살리는 것이 가장 급한 과제다. 경제를 되살리자는 데는 정치권 재계 노동단체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개혁의 방법과 강도,범위를 놓고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과연 그녀가 독일병을 고칠 수 있을지에 대해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뒤셀도르프(독일)=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