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효 파라다이스 호텔 디저트 전문가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설탕 안 들어간 쿠키를 좋아하고,쩐 득 르엉 베트남 주석은 토마토를 말려 만든 빵을 즐긴다.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는 쌀로 만든 케이크를 디저트로 제공한다.
21개국 정상들이 모두 즐기는 것으로 파악된 신선한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늘 준비한다."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의 디저트 전문 1급 조리사인 허창효씨(34).
그는 두 달 전부터 APEC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APEC 일정이 시작된 지난 12일부터는 24시간 비상대기나 다름없는 격무다. 허씨는 한 달째 퇴근을 잊었다.


정상들이 야밤에도 음식을 원하면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


"21개국 정상이 즐길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평생에 이번 한번뿐일지도 모릅니다. 조리사로서 실력을 뽐내고 제대로 평가받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조리사라는 직업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의 주 임무는 잔칫상에 오를 빵과 과자 등 200여가지의 디저트를 만드는 것. 21개국 정상을 비롯한 수많은 외빈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아이스크림과 생크림,과일 등을 결합한 '무스케이크'와 견과류·치즈쿠키를 결합한 '넛치즈케이크' 등 APEC 신메뉴만 10여개를 개발했다.


한국산 6년근 인삼 속을 파내 찬 셔벗으로 만든 뒤 다시 인삼 속에 넣어 인삼 모습을 그대로 살린 '인삼셔벗'은 정상연회의 대표 디저트로 차려진다.


영부인들을 위해 여성의 미각에 맞는 속을 아이스크림으로 채운 초콜릿도 준비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동료들과 하루에 5번씩 새 메뉴에 대해 협의해서 만들어보고,먹어보고,평가를 되풀이했습니다."


가장 신경쓰이는 일은 21개국 정상 한사람 한사람의 입맛에 맞는 개별 디저트를 준비하는 것. 그는 정상들의 입맛을 보좌관이나 경호 담당자를 통해 입수했다.


디저트에 대한 평가는 기대 이상이다. '인삼셔벗이 원더풀이다''한국의 정취를 맛볼 수 있게 해줘 고맙다'는 외빈들의 칭찬에 조리사는 피로가 가신다.


허씨는 호텔업계에서도 행사 성격에 맞는 음식 창작에 발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결을 물어보았다.


"APEC 행사 본마당인 누리마루 건물을 찾아가고 부산의 명물 조형물과 풍경도 유심히 살펴봅니다. 남포동과 서면 등 시내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 유행음식도 먹어봅니다. 누리마루를 상징하는 초콜릿,설탕으로 만든 돔 형식의 접시,새둥지 제품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그가 조리사가 된 배경이 재미있다.


"어릴 때 빵과 과자를 아주 좋아했는데 어머니가 잘 사주시지 않았습니다. 생일날 어머니는 옥수수식빵만 사주셨는데 빵집 주인이 쿠키를 덤으로 줬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날 커서 빵집 사장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고교 졸업과 함께 빵집 사장을 향한 길로 들어섰다. 우선 빵집에 취직해 청소를 하면서 주인의 빵 만드는 기술을 곁눈질로 익혔다.


저녁엔 제빵학원에 등록,주경야독으로 노력한 끝에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어 프랑스어도 독학으로 익혀 외국 요리책을 읽어가면서 신기술을 익혔다.


마침 제빵기술자가 필요한 제과점이 개업하면서 일자리를 얻었다. 이 제과점이 번창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 1995년 파라다이스호텔의 빵조리사 모집에서 5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특급호텔에서 그가 그동안 쌓은 실력은 알량한 것으로 드러났다.


"빵집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술과 감각이 필요했습니다. 오븐 감각을 익히다가 화상을 입기가 일쑤였죠. 선배들에게 기술을 인정받으려고 밤 12까지 남아 혼자 일을 익혔습니다."


7년이 지나자 선배 조리사들이 실력을 인정해주었다.


'디저트 전문가가 돼라'는 선배의 충고로 이 길을 선택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급 조리사로 승격하면서 월급도 350만원 선으로 뛰었다.
"경력이 20년 쌓이면 웬만한 특급호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제과기능장'시험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반드시 명장의 대열에 오를 겁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