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서부 極地 2만km 대장정] (8) 초모랑마에 서다

'어,별이 왜 내 눈앞에 와 있을까. 어라,달도 바로 앞에 와 있네'


추수가 한창인 시가체에서 중니공로(中尼公路)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길.시가체에서 180㎞ 가량 떨어진 라체(拉孜)를 지나 비포장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자 중니공로에서 가장 높은 갸초라(해발 5220m)고개다.
고개에는 '초모랑마 자연보호구'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입간판이 나그네를 반기지만 바람이 어찌나 세고 차가운지 아찔하다. 고개를 넘자 이미 해는 저물어 별과 달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개를 들어야 별과 달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차창 밖에 그냥 별과 달이 걸려 있다.



[ 사진 : 해발 5200m의 팡라고개 전망대에서 본 초모랑마봉.그 왼편의 마칼루,로체봉과 오른편의 초오유봉이 나란히 서 있다. ]
하늘의 별과 달은 이렇게 밝건만 길은 영 엉망이다.


시가체를 떠난 지 80여km 만에 등장한 비포장도로는 분진에 가까운 먼지로 시야를 가린다.


고도가 높아 산소가 부족한 탓에 수시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라체를 지나면서 도로는 온통 공사구간이라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수시로 기습한다.


중니궁루는 라싸에서 중국·네팔 국경의 우의교(友誼橋)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네팔의 카트만두로 연결된다.


아울러 라싸에서 초모랑마(에베레스트산의 티베트 이름)로 가려면 반드시 타야 하는 길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서부대개발의 일환으로,또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초모랑마 베이스캠프 인근 뉴 팅그리 입구의 빠이바까지 몽땅 파뒤집어놓고 공사 중이다.


빠이바에 있는 팅그리주봉빈관(定日珠峰賓館)에 도착하니 밤 10시.'주봉'은 초모랑마의 한자 표기인 '주목랑마(珠穆朗瑪)'에서 따 줄인 말.이미 영업이 끝났어야 할 호텔식당에서 대충 저녁을 해결하고 나니 탐험대원 모두가 녹초 상태다.


하지만 내일은 초모랑마에 가는 날.말로만 듣던 초모랑마를 직접 보게 되는 벅찬 감동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정도 피로쯤이야 무슨 대수랴.


다음 날 아침,영하의 기온 속에 다들 준비해온 방한복을 최대한 껴입고 초모랑마를 향해 길을 나섰다.


빈관을 나와 루루허(魯魯河)를 건너 중니궁루를 따라 6km쯤 가자 루루(魯魯)검문소가 나온다.


여권의 중국 비자기간 등을 간단히 검사한 후 통과해 다시 6km쯤을 가자 네팔과 초모랑마 다번잉(大本營·베이스캠프의 중국어) 방향이 갈라지는 '초모랑마 삼거리'.표지판은 초모랑마까지 101km라고 알려준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4km쯤 더 올라가자 초모랑마 입산을 위한 입장표 검사처에서 인원과 입장표 수,차량 숫자 등을 확인한다.


입장표 검사처 주변의 마을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거대한 산등성이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은 멀리서 보면 장관인데 직접 오르려니 아찔하다.


한참 동안의 지그재그 달리기를 끝내고 해발 5200m의 팡라고개에 이르자 이번에는 거센 바람이 차도,사람도 날려버릴 듯하다.


그럼에도 정상에선 이 바람을 맞지 않을 수 없다.


울긋불긋한 타르초와 크고 작은 돌탑들 너머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거봉들….가운데의 초모랑마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마칼루와 로체,오른편에는 초오유 등 해발 8000m급 고봉들이 일렬로 서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고상돈씨가 1977년 한국인으로선 첫발을 디딘 이래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 등 숱한 한국 산악인들이 당찬 기개를 폈던 산,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허락하지 않는 신들의 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히말라야에 오른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가 자신들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티베트어 '초모랑마'는 '대지의 여신'이란 뜻이고,네팔 이름 '사가르마타'는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뜻인 게 결코 우연이 아닌듯하다.


그들이 겸손으로 대했던 저 산에 경의를 표하며 봉우리 하나 하나를 소중한 보물처럼 카메라에 옮겨 담고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은 'S자'형의 지그재그다.


인간들이 거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 곡예하듯 내려오는 모양을 초모랑마가 내려다보고 있다.


숱한 지그재그와 바위터널을 지나자 비로소 초모랑마 방문객들이 쉬어가는 다시쭝(打西宗)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에서 얼마쯤 올라가자 또다시 통제소가 나오고 여기선 타고 온 모든 차를 세워두고 통제소에서 운영하는 밴 차량을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탐험대와 동행한 중국 국제체육여유공사의 이원 총경리가 "이 탐험대는 국가의 허락 하에 움직이는 외빈들"이라며 힘(?)을 써 탐험대 차량으로 그냥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베이스캠프에서 8km 떨어진 룽부쓰(絨布寺)에 도착해서도 이 국장은 이곳에서 갈아타야 하는 '당나귀 수레' 대신 탐험대 차량으로 베이스캠프까지 가도록 조치했다.


덕분에 당나귀 수레를 타고 덜컹거리며 고생 좀 해보겠다던 희망은 물거품이 됐지만 초모랑마 베이스캠프에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첫 기록을 세웠다.


드디어 해발 5200m의 초모랑마 베이스캠프.낯선 차량들이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장사꾼들이 팔찌며 목걸이,화석 조각 등을 주렁주렁 들고 나와 호객하기에 바쁘다.


간신히 이들을 헤치고 수십여동의 천막으로 된 호텔과 찻집,식당들을 지나 사진을 찍을 만한 언덕에 오르니 초모랑마가 세찬 바람과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당장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어 벅찬 가슴만 쓸어내리다 사진을 찍고 돌아선다.
아,저 산! 아,저 봉우리!


초모랑마(에베레스트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