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부조금

영업 현장을 뛰어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거래처 담당자의 장인 장모 상가에 빨리 달려가면 다음 수주는 틀림없다." 관행상 친부모 초상보다 조문객이 적은 장인 장모상을 잘 챙기면 '인간적'이라는 평과 함께 가까워질 수 있고 그 결과 '팔이 안으로 굽는' 효과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장인 장모상이 아니라도 상가(喪家)에 와주는 사람은 고맙다. 갑자기 당해 황망한 경우는 물론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때라도 찾아와 위로해주면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시집 장가 보내본 이들은 행여 식장이 초라해보일까 걱정되는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반갑다고 한다. 또 방명록 정리 도중 보통보다 다소 많은 부조금(扶助金)이 눈에 띄면 누가 낸 건지 살펴보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곤 기억해뒀다 그쪽 경조사가 닥치면 그만큼은 해야지 마음먹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조사 챙기기는 이렇게 상부상조의 성격이 짙지만 간혹 그 이상의 것이 되는 수도 잦다. 경조사가 문제 되는 건 부조금 때문이다. 마음씀과 정성의 표시여야 할 부조금이 인맥 쌓기용 내지 뇌물용으로 쓰이는 통에 사람과 돈 모두 몰리는 데만 몰리고 정작 거들어줘야 할 곳은 썰렁하기 짝이 없는 부익부빈익빈 사태가 벌어진다. 현직에 있을 때 자식 혼사를 치르려 애쓰는 풍토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건설업과 각종 수사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된 브로커 윤모씨의 경우 거액의 조의금을 내거나 회갑연 비용을 부담하는 등의 부조금 활용 수법으로 정ㆍ관계와 검찰 경찰 군(軍) 등에 끈끈한 인맥을 구축,큰소리 뻥뻥 치며 수백억원의 돈을 주물렀다고 한다. 오랜 친구나 친척에게 받는 축의금과 조의금도 결국엔 돌려줘야 할 빚이나 다름없는 터에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낸 거액의 부조금을 받았다면 분명 대가를 치렀거나 치를 각오를 했을 것이다. 윤씨 수첩에 이름이 적혔을지 모른다 싶은 인사들의 가슴이 얼마나 탈지 눈에 선하다. 제발 경조사 좀 간소하게 하고 부조금을 둘러싼 고리도 끊자.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