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퇴직연금제 경쟁력 갖추려면

박진호 오늘(1일)부터 우리나라에도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다. 정부당국의 오랜 고심과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거치는 산고 끝에 나온 제도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퇴직연금제도가 실시된 후 금융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금융시장으로 새로운 자금이 지속적으로 공급됐기 때문이다. 1974년 퇴직연금제를 본격 도입한 미국에서는 다우존스지수가 1980년 1000포인트 대에서 2000년 10,000포인트 대로 올라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다양한 금융상품의 재원을 제공했다. 2004년 현재 미국 전체 금융자산의 약 55%가 퇴직연금 관련 자산인 것으로 추정된다. 퇴직연금은 또 금융시장을 활성화하고 안정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기관투자가들은 트레이드 중심에서 우량주식과 회사채에 대한 장기투자로 전환함으로써,금융시장을 성숙하게 만들었고,이는 다시 종업원의 재산증식,노후안정을 보장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와 소비 증대를 유발해 내수가 활성화되는 선순환효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 퇴직연금도먼저 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늘어나는 금융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금융기관의 역량이 요구된다. 현재 퇴직연금은 급격한 변화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이 기간은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외국사례를 감안할 때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노사 협상에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퇴직연금 운영 주체인 금융회사도 이 기간내에 충분한 역량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퇴직연금 시장이 꼭 국내 금융회사의 몫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역량과 인프라 구축에 엄청난 초기투자를 하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철저한 준비를 소홀히 한다면 막상 수익성이 높아지는 시장 성장기에는 해외에서 몰려오는 최고급 금융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업계가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새 제도의 발전과 정착을 위해 서로 양보 협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또 기존 시장보호에 안주하기 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에 나설 필요도 있다. 이런 기본 방향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체적인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먼저 이제 도입되는 퇴직연금제도는 적립비율 방식 등 많은 부분에서 연금계리학적인 고려가 빠져 있다. 연금계리학은 퇴직연금의 재무건전성을 보장하고 검증하는 학문으로 퇴직연금 운영의 필수분야다. 근로자의 수급권 보장을 위한 다른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해서 연금계리학적 고려를 하지 않는 것은 경쟁력 측면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다. 둘째,자산운용 측면의 문제로 기업 및 개인 신용평가 시스템의 과학화 등 장기성 투자상품을 개발해내는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장기성 국채와 회사채 등 퇴직연금 자산에 주로 쓰이는 상품들이 어떻게 하면 국내에서도 생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고객이 되는 근로자에 대한 투자교육과 노후설계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근로자들은 은퇴 후 노후생활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춘 재무설계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며 이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좋든 싫든 퇴직연금이 현실로 다가왔고,금융환경도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근로자의 노후보장을 위한 퇴직연금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국내 금융산업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나아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성장해 일본 중국 인도 등지로 금융산업을 확장시켜 나가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아니면 세계로 뻗어가야 할 핵심산업 중 하나인 금융시장을 다른 선진국에 넘겨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