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오래된 객지

새끼줄로 매단 얼음을 들고 종종걸음치던 아홉 살,


삶이란 쉽게 녹는다는 것을
햇살 물컹이던 그 신작로에서 알았어야 했다


바늘로 네모덩이얼음을 잘게 부수던 어머니의 망치질,


삶은 큰 칼이 아니라 바늘끝으로 쪼개진다는 것을
그 앉은뱅이 부뚜막에서 알았어야 했다


수박 한쪽을 쌀양푼의 화채로 만들면서 옆집에 한 그릇 건네면서,


삶은 늘일 수 있다는 걸,달고 선선히 나누어진다는 걸
흰버짐 많은 그 추억에서 알았어야 했다


겨울별자리 근처


캄캄하다
여인숙 바람벽에 걸린 철사옷걸이처럼


구석방에서 구부러진 하루


문 두드릴 옆집도 바늘로 쪼갤 얼음덩이도 얼음을 매달 새끼줄도 없는


-김수우 '오래된 객지' 전문



객지생활의 비애는 겨울에 더 절절하다.


뒷골목 여인숙에 휴지처럼 구겨진 몸을 부려놓고,냉기 밀려오는 바람벽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할 때의 그 막막함.하지만,몸도 몸이지만 마음의 객지를 헤매는 사람들이 더 춥고 서글플지 모른다.


덧없는 욕심과 경쟁에 휘둘리며,앞뒤 가릴 여유 없이 하루하루 생존해야 하는 우리는 모두 마음의 실향민이 아닐까.
겨울은 오고 있는데 고향 잃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