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서부 極地 2만km 대장정] (9) 세계의 지붕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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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랑마(에베레스트산)의 감동을 안고 다시 팅그리주봉빈관(定日珠峰賓館)으로 돌아오니 벌써 해가 떨어진 지 오래다.
주봉빈관은 말이 빈관이지 시설이 여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끝이 가물가물할 만큼 좁고 기다란 복도는 컴컴해서 방 호수를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고,방은 영하의 기온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전천후(?)다.
이불로는 추위를 막는 데 역부족이라 결국 침낭 신세를 져야 했다.
욕실은 있으나 샤워하기에는 무리다.
피곤한 탓인지 빈관 식당의 음식도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에 떠난 빈관을 저녁에 다시 보니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하다.
[ 사진 : 초모랑마 인근 팅그리에서 티베트 서부로 가는 길에 만난 대상들.야크떼에 짐을 싣고 험한 길을 오르고 있다. ]
다음날 아침 탐험대는 이틀 전 지나온 라체를 향해 되돌아간다.
탐험차량 4대 가운데 3호차의 연료탱크에서 기름이 새는 게 발견돼 수리가 필요한 데다 본격적인 비포장길을 앞두고 전반적인 차량 점검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차가 막 출발할 즈음,문제가 생겼다.
욕실 세면대 옆에 둔 취재수첩을 그냥 두고 온 것.급히 방으로 달려가 찾아보니 하늘이 노랗다.
그새 청소를 했는지 수첩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이놈의 건망증…."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책하고 있을 때 자그마한 키의 청소원 아주머니가 급히 달려와 취재수첩을 내민다.
"아이고,내 수첩! 셰셰!" 반가운 마음에 수첩을 받아들고 이상이 없는지 잠시 펴보니 아마도 쓰레기장까지 갔다가 온 모양이다.
뭐 좀 묻었으면 어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아주머니는 어느새 멀어지고 없다.
고맙다는 인사도,작은 사례도 못 한 채 그냥 출발하고 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라체로 가는 길은 올 때처럼 흙먼지투성이의 공사구간이다.
그나마 나은 것은 올 때처럼 밤길이 아니라는 점.그래도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
파이고 솟고 울퉁불퉁한 길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달리자니 시속 20km에도 못 미친다.
마주오는 차가 지나가고 나면 한참 동안 먼지가 놓아주지 않는다.
곡절 끝에 라체에서 가장 큰 숙박시설인 라체빈관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지났다.
앞에서 보면 깔끔하지만 내부나 뒤쪽에서 보면 낡고 허술한 게 이곳 건물들의 특징.라체빈관도 예외는 아니다.
전면은 흰 타일로 그럴듯하게 장식돼 있지만 막상 건물 뒤쪽 별채의 방을 배정받고 다가서니 전혀 딴 모습이다.
기다란 2층 건물인 별채는 복도와 테라스를 겸한 통로가 마당을 향해 트여 있어 옛날 중국 영화에 나오는 세트 같다.
복도 끝의 시멘트 계단을 올라 2층 방으로 들어서니 흙바닥에 침대 두 개가 썰렁하게 놓여 있다.
천장에는 백열등 하나가 달랑 달렸는데 스위치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스위치가 방문 옆 벽에 있는 게 아니라 방 한가운데 기둥 안쪽에 가느다란 실로 매달아놨던 것.컴퓨터를 켜기 위해 간신히 찾아낸 콘센트는 거울 앞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욕실은 없고,방에는 보온병과 찬물 한 통,세숫대야를 갖다놓았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은 자연낙하식(?)이다.
그래도 마당이 넓고 햇살마저 따스한 데다 오후 일정을 잡지 않아 모처럼 잠깐의 여유를 즐긴다.
마당 한쪽의 세차장에서 먼지투성이인 차도 씻고 빨래도 한다.
세차장을 지키는 소녀가 "바지 하나에 중국돈 10원"이라며 여러 사람 빨래를 걷어간다.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빨래를 걸어놓으니 오후 햇살이 한가롭기만 하다.
이런 여유도 잠시뿐이다.
쌍용자동차 소속의 엔지니어들은 차를 수리하러 가고 현광민 탐험대장은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홈페이지에 올릴 글과 사진을 챙기느라 바쁘다.
미디어팀은 티베트 농가를 방문하기로 했다.
마침 호텔 여직원 빠쯔씨(25)가 라체 인근 농촌 출신이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호텔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빠쯔씨의 집에 다녀오니 저녁 9시.호텔 주위가 캄캄하다.
벌써 두 번째 정전이라고 한다.
사발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다음날 아침엔 눈뜨기가 무섭게 출발이다.
아침밥도 건너뛰었다.
비포장길 450km를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티베트 지형에서 서쪽으로 달리는 길이니 갈수록 평균 고도가 높아진다.
그나마 도로 상태가 양호해 시속 40~60km로 달리니 다행이다.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평원을 달리는 기분이란….야크에 짐을 싣고 가는 대상(隊商)들을 보니 진짜 '티베트 속으로' 들어왔음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티베트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어리(阿里)까지 몇 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앞으로 다가올 험로를 예고한다.
해발 4500m 이상의 고개 셋과 5000m 이상의 고개 둘을 넘어 라체 기점 228km 지점의 '얼스얼(22도반)' 초대소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목적지인 중바(仲巴)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고 험해진다.
라가장푸강을 왼편에 끼고 달리는 끝없는 자갈길과 변화없는 민둥산,고도는 점점 높아져 산소가 더욱 부족해지는데 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 수도 없다.
평소 "나는 오프로드(off-road) 체질"이라며 비포장길 운전을 마다하지 않던 쌍용자동차의 김영제 부장마저 "지겹다"를 연발한다.
드디어 중바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도시는 온통 암흑 천지다.
사납기로 유명한 티베트 개들이 십여 마리씩 떼지어 돌아다니는 바람에 차에서 내릴 수도 없다.
"오늘 숙소는 새로 지은 호텔"이라며 잔뜩 기대감에 부풀게 했던 티베트인 안내원은 숙소가 어딘지 찾지도 못하고 헤맨다.
결국 수소문해 찾아간 곳은 중바현 초대소.창고 같은 건물에서 3~4명이 한 방을 써야 한단다.
영하 12도의 추위에 손바닥만한 전기난로 하나가 난방장치의 전부다.
감기 기운이 있는 데다 해발 4600m라 머리가 띵하다.
그나마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웠으니 이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일까.
중바(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주봉빈관은 말이 빈관이지 시설이 여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끝이 가물가물할 만큼 좁고 기다란 복도는 컴컴해서 방 호수를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고,방은 영하의 기온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전천후(?)다.
이불로는 추위를 막는 데 역부족이라 결국 침낭 신세를 져야 했다.
욕실은 있으나 샤워하기에는 무리다.
피곤한 탓인지 빈관 식당의 음식도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에 떠난 빈관을 저녁에 다시 보니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하다.
[ 사진 : 초모랑마 인근 팅그리에서 티베트 서부로 가는 길에 만난 대상들.야크떼에 짐을 싣고 험한 길을 오르고 있다. ]
다음날 아침 탐험대는 이틀 전 지나온 라체를 향해 되돌아간다.
탐험차량 4대 가운데 3호차의 연료탱크에서 기름이 새는 게 발견돼 수리가 필요한 데다 본격적인 비포장길을 앞두고 전반적인 차량 점검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차가 막 출발할 즈음,문제가 생겼다.
욕실 세면대 옆에 둔 취재수첩을 그냥 두고 온 것.급히 방으로 달려가 찾아보니 하늘이 노랗다.
그새 청소를 했는지 수첩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이놈의 건망증…."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책하고 있을 때 자그마한 키의 청소원 아주머니가 급히 달려와 취재수첩을 내민다.
"아이고,내 수첩! 셰셰!" 반가운 마음에 수첩을 받아들고 이상이 없는지 잠시 펴보니 아마도 쓰레기장까지 갔다가 온 모양이다.
뭐 좀 묻었으면 어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아주머니는 어느새 멀어지고 없다.
고맙다는 인사도,작은 사례도 못 한 채 그냥 출발하고 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라체로 가는 길은 올 때처럼 흙먼지투성이의 공사구간이다.
그나마 나은 것은 올 때처럼 밤길이 아니라는 점.그래도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
파이고 솟고 울퉁불퉁한 길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달리자니 시속 20km에도 못 미친다.
마주오는 차가 지나가고 나면 한참 동안 먼지가 놓아주지 않는다.
곡절 끝에 라체에서 가장 큰 숙박시설인 라체빈관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지났다.
앞에서 보면 깔끔하지만 내부나 뒤쪽에서 보면 낡고 허술한 게 이곳 건물들의 특징.라체빈관도 예외는 아니다.
전면은 흰 타일로 그럴듯하게 장식돼 있지만 막상 건물 뒤쪽 별채의 방을 배정받고 다가서니 전혀 딴 모습이다.
기다란 2층 건물인 별채는 복도와 테라스를 겸한 통로가 마당을 향해 트여 있어 옛날 중국 영화에 나오는 세트 같다.
복도 끝의 시멘트 계단을 올라 2층 방으로 들어서니 흙바닥에 침대 두 개가 썰렁하게 놓여 있다.
천장에는 백열등 하나가 달랑 달렸는데 스위치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스위치가 방문 옆 벽에 있는 게 아니라 방 한가운데 기둥 안쪽에 가느다란 실로 매달아놨던 것.컴퓨터를 켜기 위해 간신히 찾아낸 콘센트는 거울 앞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욕실은 없고,방에는 보온병과 찬물 한 통,세숫대야를 갖다놓았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은 자연낙하식(?)이다.
그래도 마당이 넓고 햇살마저 따스한 데다 오후 일정을 잡지 않아 모처럼 잠깐의 여유를 즐긴다.
마당 한쪽의 세차장에서 먼지투성이인 차도 씻고 빨래도 한다.
세차장을 지키는 소녀가 "바지 하나에 중국돈 10원"이라며 여러 사람 빨래를 걷어간다.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빨래를 걸어놓으니 오후 햇살이 한가롭기만 하다.
이런 여유도 잠시뿐이다.
쌍용자동차 소속의 엔지니어들은 차를 수리하러 가고 현광민 탐험대장은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홈페이지에 올릴 글과 사진을 챙기느라 바쁘다.
미디어팀은 티베트 농가를 방문하기로 했다.
마침 호텔 여직원 빠쯔씨(25)가 라체 인근 농촌 출신이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호텔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빠쯔씨의 집에 다녀오니 저녁 9시.호텔 주위가 캄캄하다.
벌써 두 번째 정전이라고 한다.
사발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다음날 아침엔 눈뜨기가 무섭게 출발이다.
아침밥도 건너뛰었다.
비포장길 450km를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티베트 지형에서 서쪽으로 달리는 길이니 갈수록 평균 고도가 높아진다.
그나마 도로 상태가 양호해 시속 40~60km로 달리니 다행이다.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평원을 달리는 기분이란….야크에 짐을 싣고 가는 대상(隊商)들을 보니 진짜 '티베트 속으로' 들어왔음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티베트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어리(阿里)까지 몇 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앞으로 다가올 험로를 예고한다.
해발 4500m 이상의 고개 셋과 5000m 이상의 고개 둘을 넘어 라체 기점 228km 지점의 '얼스얼(22도반)' 초대소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목적지인 중바(仲巴)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고 험해진다.
라가장푸강을 왼편에 끼고 달리는 끝없는 자갈길과 변화없는 민둥산,고도는 점점 높아져 산소가 더욱 부족해지는데 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 수도 없다.
평소 "나는 오프로드(off-road) 체질"이라며 비포장길 운전을 마다하지 않던 쌍용자동차의 김영제 부장마저 "지겹다"를 연발한다.
드디어 중바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도시는 온통 암흑 천지다.
사납기로 유명한 티베트 개들이 십여 마리씩 떼지어 돌아다니는 바람에 차에서 내릴 수도 없다.
"오늘 숙소는 새로 지은 호텔"이라며 잔뜩 기대감에 부풀게 했던 티베트인 안내원은 숙소가 어딘지 찾지도 못하고 헤맨다.
결국 수소문해 찾아간 곳은 중바현 초대소.창고 같은 건물에서 3~4명이 한 방을 써야 한단다.
영하 12도의 추위에 손바닥만한 전기난로 하나가 난방장치의 전부다.
감기 기운이 있는 데다 해발 4600m라 머리가 띵하다.
그나마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웠으니 이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일까.
중바(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