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前 386 참모 '절반의 비망록' 발간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직후 측근비리 및 정치자금 의혹의 전모를 밝히기로 하고, 2003년 4월 국회에서의 첫 국정연설에서 이를 공개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가 참모들의 만류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이씨는 기록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 이틀 후인 12월21일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서 안희정 이광재씨를 별도로 불러 대국민 '고해성사'를 제안했다는 것.이에 따라 안씨는 1월 둘째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자금의 전모를 밝힌 뒤 검찰에 자진 출두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 소식을 접한 '386 동지들'의 반대 등으로 인해 기자회견 이틀 전 결심을 접었다. 노 대통령도 3월 국정연설을 통해 나라종금 사건의 전말과 함께 대선자금 내역도 전부 공개하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참모들의 만류로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잇따른 측근비리 의혹과 관련해 2003년 10일10일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참모들의 완강한 반대와 맞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가 진척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반기문 외교보좌관),"시기상조다"(문재인 민정수석)라는 것이 참모진의 전반적 의견이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특히 한 측근 참모는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러 청와대 춘추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자 부속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막아요. 춘추관 못 가게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막아요"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초 검찰이 정치자금 수사를 10대 재벌기업으로 확대했다는 보고를 받고 "잘하는 것이다. 검사가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시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던 안대희 대검중수부장의 성역 없는 수사 방식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이씨는 기록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사시 동기생들과의 모임에서 "안대희씨가 원칙대로 파헤치는 검사라는 이야기만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는데도 불구하고 "어디 내가 죽나"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이씨는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직무정지에 따라 본관을 나서는 순간에도 웃음을 지어보였고,직원들의 눈물바다를 이룬 관저로 들어서면서 "밀가루를 뒤집어 쓴 기분이로군"이라는 혼잣말을 하며 빙긋 웃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2004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총리 주도의 동거정부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야당에 대한 파격적인 양보를 전제로 하는 실질적 총리책임제를 구상 중이었다고 이씨는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총선 직후 참모들에게 "나는 총선 결과를 재신임으로 받아들인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넘기면 그대로 가고,못 넘기면 원내 연합세력에 실질적 정권을 넘긴다는 것이었다"며 자신이 갖고 있던 복안을 참모들에게 공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참여정부 1기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코드 문제'도 소개했다. 이씨는 우선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을 정치 분야에서 노 대통령과 대화가 통한 인물로 기억했다. 조윤제 경제보좌관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이 "조 보좌관이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내가 바라던 역할과 일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총선 전 문 실장으로부터 바통을 건네받은 김우식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택시기사들의 쌍욕까지 그대로 전하는 등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할 정도의 직언을 잘하기로 이름 높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청와대를 떠난 개인의 차원에서 출간을 결정한 일"이라며 "청와대 차원의 기획이 아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필자의 판단과 책임에 달린 문제"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