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구 신화학

그리스 신화에는 아폴로신전의 오라클에서 이루어지는 신탁(神託)이라는 것이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경우에 공물을 바치고 그 곳에서 파티아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 때 파티아는 지하제단의 지면이 갈라진 삼각대 위에 앉아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고 한다. 땅속에서 메탄과 에틸렌가스가 나와 환각상태에서 말했다는 것은 수천년 후에야 현대과학이 비로소 알아냈다. 태국의 유랑부족인 모켄족에는 오래된 전설이 내려온다. 조류가 아주 빠른 속도로 물러나면 사람 잡아먹는 파도가 밀려오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잘 알려진 쓰나미의 전조현상이다. 지난해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남아시아의 쓰나미는 먼 옛날에도 일어났던 재앙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신화와 전설을 지구활동과 연관지어 과학적 연구를 하는 신학문이 등장했다고 영국의 가디언지가 최근 보도했다. 장래의 대규모 재난에 대비하는 실용학문으로 '재난예고학' 또는 '지구 신화학(神話學)'으로 불린다. 과거 지진이나 화산폭발,쓰나미 등이 일어난 곳에서는 앞으로도 유사한 재앙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만 해도 부지기수다. 피지 원주민들의 전설을 단서로 삼아 피지의 화산이 휴면화산이 아닌 활화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는가 하면,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비롯 중동지방에서 전해오는 홍수에 관한 전설들을 추적해 흑해의 범람을 증명하기도 했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플라톤이 당시 전해오는 얘기를 모아 '대화편'에 수록한 아틀란티스 대륙이나,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 있는 네스호의 전설도 신비 속에 감춰져 있다. 상상으로만 여겨지던 신화와 전설이 과학으로 다시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우리 한반도 곳곳에 산재해 있는 먼 옛날 얘기들도 한데 모아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성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