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공정위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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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공정위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경쟁법 위반여부 심의 등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집행능력과 수준이 세계적으로 선도적 지위에 있음을 최근 확인했다는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공정위가 4년여에 걸친 조사와 심의 끝에 지난 7일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조치를 내린 일과 관련해서다.
MS 제재에 대한 공정위 스스로의 평가는 이렇다. 역사상 최대 사건을 맞아 세계 최고수준의 사실분석과 경제분석을 실시함으로써 MS라는 거대 외국기업의 위법성을 입증했고, 심의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보장했으며,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의 경쟁당국에 비해 훨씬 실효성있는 시정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고 있고, 또 당사자인 MS가 불복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이에 대한 논평은 유보하기로 하고, 나머지 다른 부분들만 따져보면 공정위의 자평도 일리는 있다.
우선 사실분석 및 경제분석과 관련해 2001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스티글리츠(Stiglitz) 등 저명한 국내외 경제학자들을 비롯해 법률가와 컴퓨터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 공정위에 의견을 진술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각종 연구논문, 경제 및 기술분석 자료와 증거들을 바탕으로 MS의 위법성을 입증했다는 것을 공정위는 뿌듯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또 심의과정에서 어떤 하자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모두 7차례에 걸쳐 전원회의를 개최하는 등 MS에 대해 충분히 방어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위 역사상 단일 사건 회의개최 횟수로는 가장 많은 것이다. 공정위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는 통상 처리기간이 6개월 정도인 다른 사건들에 비해 MS사건의 경우 4년여나 걸렸다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공정위의 이런 철저한 분석과 배려가 단지 MS사건이 그 규모나 복잡성, 그리고 파급효과 측면에서 여타 사건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다시 말해 상대가 미국의 거대기업인 MS가 아니고 국내기업이었더라도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정말 자부심을 가지려면 이런 의문부터 불식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가 국내기업인 경우에도 세계 최고수준의 사실분석과 경제분석을 토대로 따지고, 충분히 방어기회를 주는 등 절차의 정당성 확보에 각별히 신경쓰라는 것이다. 공정위 제재에 억울해하는 기업들이 많고, 막상 법원에 가면 공정위 결정이 뒤집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내친 김에 공정위에 한 가지 더 주문할 게 있다. 차제에 규제방식도 과감히 바꿨으면 한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규제는 공정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단에 따른 각종 사전규제들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사실분석과 경제분석을 공정위가 자랑할 정도면 더 이상 후진적인 사전규제에 의존할 까닭이 없다. 이번 MS사건에서처럼 모든 것을 사실에 기초, 경쟁촉진을 위한 사후규제로 풀어나갈 수 있음을 공정위는 보여줘야 한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